서울대학교병원이 불법 동물실험 의혹, 마약류 관리 부실 문제로 고발당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실험묘를 1년간 방치하다 마취제 없이 고통사시켰다는 내부 폭로가 나온 지 약 한 달만이다.
동물권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이하 비구협) 유영재 대표는 20일 서울대학교병원과 총 연구책임자 A 교수를 마약류 관리법, 동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사해달라며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총 연구책임자인 서울대학교병원 이비인후과 A교수는 2015년 8월부터 3년간 실험묘를 대상으로 ‘인공와우이식기를 통한 대뇌청각피질 자극 모델’ 연구를 시작했다. 실험은 고양이 왼쪽 귀 뒤편에 약물을 주입해 기능을 잃게 한 후 인공와우(인공 달팽이관)를 이식해 청각 대뇌 피질 변화를 확인하는 내용이다.
비글구조네트워크가 고발장에 적시한 A교수의 혐의는 총 세 가지다.
우선,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다. 비구협은 “A교수 연구팀이 2017년 8월에 제출한 동물실험계획서상 ‘이전 연차까지 진행한 실험내용/결과’에 다른 기관 교수의 연구과제 데이터를 출처나 인용없이 도용했다”고 보았다.
A교수 연구팀이 다른 기관 교수의 ‘결과보고서’ 데이터를 본인의 동물실험계획서에 가져와놓고선, 직접 도출한 ‘이전 연차의 실험 결과’인 마냥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원회)를 속이고 승인받았다는 이야기다. 윤리위원회는 해당 기관 내에서 수행되는 동물실험 연구과제에 대한 심의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비구협은 “윤리위원회가 A교수 연구팀이 제시한 데이터를 ‘이전 연차에 진행한 실험내용’으로 믿고 승인해 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A교수가 허위 소명자료를 동물실험계획서에 고의로 기재하여 윤리위원회를 속이고 승인받은 행위는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마약류 관리법 위반이다. 서울대학교병원이 실험묘 6마리를 안락사 처리할 때 마취제도 없이 죽였다는 현장 당사자의 구체적인 증언이 나온 바 있다.
A교수 연구팀 출신이자 공익제보자 이도희(가명) 씨는 “2018년 8월께, 서울대학교병원 전임상실험부 소속 수의사 B가 실험묘 6마리 모두에게 사전 마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심정지 약품을 투약했다”고 증언했다. 안락사가 아닌, 고통사를 시행했다는 고백이다.
원칙상 안락사는 동물이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사전 마취 후에 심정지 약품을 투약하는 게 정상 절차다. 실험묘 6마리를 1년간 돌보았던 이 씨는 수의사가 안락사 조치를 할 때 실험묘의 다리를 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실험묘 6마리를 정상적으로 안락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증명할 ‘마약류 사용 기록서’를 갖고 있지 않다. 마약류취급학술연구자는 마약이나 향정신성의약품을 학술연구에 사용할 경우 마약류통합시스템(NIMS)을 통해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병원 측은 ‘마약류 사용 기록서’가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단순 착오라고 해명하고 있다.
서울대학교병원은 “당시 마약 관리 담당자인 이 씨가 실험 후 바로 기록하지 않고 나중에 기억에 의존해 기록하다가 다른 내역으로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며 책임을 공익제보자 이 씨에게 미루기도 했다.
마약류관리법 제35조 3항에 따르면, 마약류취급학술연구자는 향정신성의약품을 학술연구에 사용했을 때에는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연구에 관한 장부(마약류 사용 기록서 지칭)를 작성해야 한다.
이를 작성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작성·보고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나아가 비구협은 ‘서울대학교병원 법인’에도 마약류 관리 책임을 물었다. 마약류 관리법은 양벌규정을 두어 위법행위에 대해 행위자를 처벌하는 외에, 그 업무의 주체인 법인 또는 개인도 함께 처벌할 수 있다.
비구협은 “서울대학병원 법인은 A교수가 연구 등을 위해 향정신성의약품(마약류)를 사용하는 경우 그 의무사항을 철저히 이행하도록 관리하고 감독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대학교병원 법인은 해당 실험이 종료된 2018년 이후 2년이 지나도록 A교수의 마약류관리장부 미작성 등의 위법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방임을 해 벌금형을 부담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은 ‘동물보호법 위반’이다. 서울대학교병원은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고양이를 동물실험에 이용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최근 비판을 받았다.
서울대학교병원은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개인 농장인 ‘CJ farm’에서 고양이를 반입했다고 밝혔지만, 파주시 농축산과 가축방역팀은 “1990년대 이후 등록된 반려동물생산업체 모두 검색해보았지만, ‘CJ farm’으로 등록하거나 허가받은 업체는 없다”고 설명했다.
개, 고양이와 같은 반려동물을 생산하는 반려동물생산업자는 해당 지역 관할청에 허가를 받아야하는데, ‘CJ farm’은 시에 등록이 안 된 ‘불법 농장’일 확률이 상당한 셈이다.
공익제보자 이 씨가 제시한 실험묘 6마리 사진을 살펴보면, 품종묘인 ‘페르시안’과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리안 숏컷’이 뒤섞여 있다.
비구협은 이 씨가 제시한 실험묘 사진을 근거로 “유기·유실묘 실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동물생산업자들은 품종묘에 비해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리안 숏컷은 상대적으로 상품 가치가 떨어져 거의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서울대학교병원이 ‘CJ farm’(농장)에서 구입한 실험묘가 유기·유실묘(길고양이 포함)였을 경우, 이는 동물보호법 제24조 위반에 해당한다. 동물보호법은 유실·유기동물(보호조치 중인 동물을 포함)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을 금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유영재 비구협 대표는 중앙지검 정문 앞에서 취재진들을 만나 “무조건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과학계와 사회가 윤리적으로 약속한 최소한의 절차와 시스템 안에서 해야하는 것”이라며 “과정이 정직하지 못 하고, 불필요하게 실험 동물이 희생되며 예산이 낭비되는 건 과학이 아니”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