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만나 가르침을 주고 받진 않았어도, 조주빈과 양진호는 두 평행세계를 살아가는 하나의 자아처럼 여러 면에서 닮았다. 비대면 기술을 이용한 디지털–성착취 영상으로 범죄 수익을 얻고, 체포 이후에는 반성과 사과 대신 허세를 택한 점이 그렇다.
시작과 끝이 비슷한 두 사람. 잔혹한 범죄와 교묘한 수법 면에서 조주빈이 양진호를 넘어선 듯하지만, 실상을 보면 청출어람 따위는 없다.
양진호에 비하면 조주빈은 애송이에 불과하다.
변종 n번방이 생겼지만, 조주빈의 범죄 행각은 그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끝났다. 그의 범죄수익 역시 마찬가지다.
그에 반해 양진호는 2018년 11월 구속 이후에만 약 200억 원을 벌었다. 조주빈이 공익근무요원을 동원할 때, 양진호는 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회사 일을 맡기고 자신을 방어했다.
n번방 참여자 26만 명? 불법 음란물이 넘치는 양진호 소유 회사 <위디스크><파일노리>에는 날마다 20여만 명이 찾아온다. n번방 이슈가 조금씩 한국 사회를 달구던 지난 2월, 양진호의 두 회사는 매출액 27억 원을 찍었다.
<위디스크>는 양진호 구속 직후 보란듯이 ‘19금 개인방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공익신고자 등 내부고발자들이 신고를 해도, 불법 음란물은 오늘도 위디스크의 성인게시판을 도배하고, 그 덕에 양진호는 구치소에 앉아 현금으로 주머니를 채운다.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그의 결심공판이 열린 지난 5월 7일의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으로 가보자.
이날 검찰은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아 중형이 필요하다”며 양 회장에게 징역 11년을 구형했다. 특수강간, 상습폭행,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대마), 동물보호법 위반, 총포화약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된 양 회장은 이런 최후진술을 했다.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본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중략) 범죄에 연루된 직원과 기소된 직원들은 모두 제 잘못인 만큼 선처해 주십시오. 현재의 제가 매우 부끄럽습니다.”
진정한 사과와 반성은 판사가 아닌 피해자에게 해야 하는 법. 양 회장은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을까. 퇴사 이후에 위디스크 사무실로 불려가 양 회장에게 폭행을 당한 A씨에게, 결심공판 직후 전화를 걸어 물었다.
“혹시 양 회장 측에게 연락이나 사과의 뜻을 전달받은 게 있습니까?”
양진호라는 말을 듣고 당황한 A 씨가 반문했다.
“무슨 연락이요?”
그의 반문에 이번엔 내가 당황했다. 양 회장을 피해 배를 타고 세 시간을 가야만 도착하는 섬에 사는 그를 찾았던 게 지난 2018년 11월이다. ‘폭행 영상’을 세상에 공개하는 걸 허락받은 뒤 그에게 솔직히 말했다.
“돈 많은 양 회장이 미안하다면서 합의하자고 연락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기자들 눈치 보지 마시고 편하게 결정하십시오.”
내가 괜한 말을 했다. 양진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양 회장은 A씨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그에게 사과하지 않았다고 한다. A 씨는 양 회장이 아직도 두렵다며, 강한 처벌을 원했다.
“저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선, 왜 그 양반은 법정에서 사과한다는 말을 한답니까? 원래 그런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예상대로 가니까 씁쓸 하네요. 양 회장은 자기 돈을 믿고,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감옥에서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A 씨는 여전히 섬에서 산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육지로 나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번엔 양진호의 지시로 위디스크 회장실에 감금된 채 집단 폭행을 당한 대학교수 B에게 전화를 했다. B 교수는 담담히 말했다.
“제가 법정에서 증언할 때 양진호 회장이 저 노려보는 것 보셨잖아요. 그게 반성하는 사람의 얼굴입니까?”
하긴, 법정에 증인으로 나간 여러 사람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 피고인 양진호는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사람에겐 눈을 가늘게 떠서 매서운 눈빛을 날렸고, 욕설이라도 하는 듯 입을 실룩거렸다.
양 회장은 측근에게 보낸 편지에 “박상규 기자를 혼내주겠다”고 썼는데, 그걸 당장 실천하고 싶다는 듯 방청석에 앉은 나를 자주 노려보곤 했다.
B 교수는 특히 “범죄에 연루돼 기소된 직원들은 모두 제 잘못인 만큼 선처해 달라”는 양 회장의 말을 불쾌하게 여겼다.
“나에 대한 집단 폭행 지시를 내리고선 마치 예수처럼 ‘너희들의 죄를 내가 끌어 안겠다’고 말하는 게 어처구니 없습니다. 아직도 자기가 무슨 죄로 체포됐고, 구속됐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 아주 오랫동안 처절하게 고생하고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B교수를 집단폭행한 양진호 부하 세 명은 아직도 공찰의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은 선처해 달라”는 양진호 회장의 ‘예수 퍼포먼스’는 잔혹한 코미디로 보이기도 한다.
특수강간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사건을 검토했던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더 없이 끔찍한 범죄”라고 했다. 양진호는 그 범죄를 “사랑”이라고 주장한다.
여러 갑질과 폭행 이전에 많은 사람이 양 회장에게 분노하는 건, 그가 교묘하게 디지털 성범죄 영상을 유통하고 많은 수익을 얻었다는 점이다. 관련 비난이 일 때마다 양 회장 측은 똑같은 대답을 해왔다.
“그 영상을 우리가 올렸습니까? 이용자들이 우리 웹하드에 올리는 걸, 어떻게 일일이 차단합니까?”
양 회장 측이 디지털성범죄영상 및 불법 음란물을 대량으로 웹하드에 올리는 ‘헤비 업로더 조직’을 은밀하게 관리한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양 회장과 그의 측근들은 큰 처벌을 피해왔다. ‘양진호’ 하면 많은 사람이 디지털성범죄영상과 불법 음란물을 떠올리는 건 그의 행적을 봤을 때 당연한 일이다.
이쯤에서 양진호 회장의 법정 최후진술 한 대목을 다시 복기해 보자.
“(나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피해를 본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속는 셈 치고 양진호 회장을 잘 아는 사람들을 찾아갔다. 양 회장의 비위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렸다가 그의 회사에서 해고된 이들이다. C 씨에게 물었다.
“양진호 회장이 진심으로 사과한다는데요?”
C씨는 대답은 않고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는 위디스크에 접속해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 터치했다. 10초나 흘렀을까? 불법 음란물이 순식간에 우수수 나타났다.
“아직도 이런 영상을 유통하면서 돈을 버는데,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진짜 미안하고 반성하면 이런 영상이나 유포하지 말라고 하세요! 웹하드 카르텔 문제로 기소된 사람이 아직도 불법 음란물로 수십, 수백 억 매출 올리는 게 말이 됩니까?”
<위디스크><파일노리>는 2019년 12월, 매출액 27억9000만 원을 기록했다. 2020년 1월은 조금 하락해 27억7000만 원, 2월에는 27억3000만 원을 기록했다.
양진호를 대신해 <위디스크><파일노리>를 운영하는 이랑진(양진호 처)은 2019년 1월부터 5월까지 회사에서 92억5000만 원을 대여받아 이 중 91억 원을 현금으로 인출했다. 물론 이 돈의 대부분은 불법 음란물 수익금이다. 공익신고자 D 씨는 최근 이랑진 등을 배임죄 횡령죄 사문서위조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D 씨는 “수사당국은 양진호의 불법 음란물 사업을 금지하고 수익금 전액을 몰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명 ‘n번방 방지법’이 새로 생기는 등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양 회장에겐 큰 타격이 되지 않을 듯하다. 양 회장에겐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를 처벌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3조가 주요 걸림돌이었는데, 기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서, 벌금만 2000만 원으로 상향됐다.
음란물 방조죄로 구속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검찰은 최근, 음란물 방조죄로 기소된 <위디스크>의 한 핵심 간부에게 고작 벌금 100만 원을 구형했다. 양진호 회장이 지금도 ‘옥중경영’으로 불법 음란물 사업에 손을 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위디스크> 홈페이지 회사소개란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600만 명 이상이 디지털 유통의 새로운 지평을 경험했습니다. 300만 명 이상이 위디스크와 함께 늘 생활하고 있습니다. (중략) 300기가 이상의 트래픽에 편법을 쓰지 않고 정직하게 유지하는 철저한 장인정신.”
양진호 회장은 구속 되기 훨씬 이전에 회사 간부회의에서 트래픽 관련 회사의 철학(?)을 제시했다.
“우리 고객 대부분은 밤에 음란물 보는 사람들인데, 트래픽이 버벅되면 기분이 어떻겠어?”
이런 것도 장인 정신일까? 정말로 양진호는 트래픽에 편법을 쓰지 않는다. 그는 다른 편법으로 돈을 번다.
디지털성범죄영상이 아니어도 양 회장에게 돈이 되는 불법 음란물은 넘친다. 오늘도 십수 만 명이 성지순례 하듯 <위디스크><파일노리>를 찾는다. 구속된 양진호 주머니엔 지금도 어제처럼 현금이 차곡차곡 쌓인다. 양진호는 감방으로 이러고 있을지도 모른다.
“벌금 2000만 원 그까이꺼 뭐…”
피고인 양진호에 대한 1심 선고는 오는 28일 내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