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안락사로 추락했지만, 박소연 전 <케어> 대표는 위기 동물 구조 때 누구보다 몸이 빨랐다고 한다. 여러 동물권단체 관계자들의 증언이 그렇다.
동물이 아닌 본인이 위기에 처했을 때, 박 전 대표의 빠른 움직임은 사라졌다. 그는 외면, 회피, 본질 흐리기로 방식으로 일관했다.
사람들이 “왜 거짓으로 비밀 안락사를 했느냐”고 물으면 “개 식용을 전면 금지해야 합니다!”라고 외치는 식으로 말이다.
박소연 전 대표는 그 일관성을 검찰 기소 후에도 유지했다. 법원 출석을 차일피일 미루고 외면했다. 참다못한 판사가 지난 4월 23일 한마디 했다.
“재판을 계속 연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데 재판을 받기 싫다는 건지… 또 나오지 않으면 구인영장을 발부하겠습니다.”
한마디가 먹혔다. 박소연 전 대표가 ‘드디어’ 법원에 나타났다. 재판 시각보다 빨리, 자기 지지자와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525호 법정에 등장했다. 첫 공판 기일이 잡힌 지 2개월 만인 5월 21일의 오전의 일이다.
피고인석에 앉은 박 전 대표 곁에는 변호인이 없었다. 심리를 맡은 형사11단독 장영채 판사는 재판 도중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3월 말에 잡혔던 첫 재판은 기일변경과 연기를 거쳐 5월 말에야 ‘겨우’ 시작됐다.
“피고인 박소연 씨 생년월일, 주소 말씀해보세요. 그리고 변호사 조력 없이 혼자 재판받는 겁니까?”
피고인 박소연 전 대표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혼자서 재판 받을 겁니다.”
검사는 피고인 박 씨에게 적용된 혐의와 범죄 사실을 하나씩 읊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박소연 전 <케어>는 절도, 농지법 위반, 업무방해, 건조물 침입, 동물보호법 위반, 부동산 실명법 위반 등…’
장 판사는 피고인 박 전 대표를 향해 “범죄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물었다. 박 피고인은 열마디로 대답했다.
“동물보호법 혐의를 부인하고 무죄를 주장합니다. 건강한 동물 98마리를 안락사했다는 건 추정입니다. 검찰은 안락사를 시행한 수의사의 기억에 의존해서 (불법 안락사 혐의를) 개체 별로 특정하지 않았습니다. 수의사는 단순히 ‘동물이 힘이 없어 보였다’, ‘상태가 안 좋아보였다’고 진술했습니다. 정당한 사유로 동물을 안락사했다는 건 <케어> 동물관리국장 임OO의 카카오톡 대화를 보면…”
여러 동물권단체 사람들의 증언대로, 역시 박 피고인은 말이 긴 편이다. 가만히 듣고 있던 장 판사가 말을 끊었다.
“박소연 씨, 계속 말씀하실 겁니까?”
박 피고인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네, 빨리 끝내겠습니다. 인도적 안락사라는 정당성을 유지하고, 남양주 개들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아픈 상태였다는 걸 임OO의 카카오톡 대화에서 알 수 있습니다. 추후 증거자료로 제출하겠습니다. 피고는 많은 동물을 적극적으로….”
말은 빨리 끝나지 않았다. 참다 못한 장 판사는 피고인에게 다시 말했다.
“아니요. 피고인은 의견서 제출하고, 범죄 사실 인정 여부만 말하세요.”
그제서야 박 피고인은 짧게 말했다.
“공소 사실을 부인합니다.”
동물 앞에선 누구보다 빠른 박 피고인은 재판 준비에는 누구보다 굼떴다. 그는 법정에 나온 뒤에야 직접 서류를 제출했다. 서류를 받아 본 장 판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장 판사는 피고인에게 다시 물었다.
“피고인, 국선 변호인도 필요 없는 거예요?”
박 피고인은 “국선 변호인 조력은 필요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장 판사는 못 박듯이 말했다.
“(재판 준비) 제대로 하세요.”
재판부는 두 번째 공판 기일을 잡으며 재판을 마쳤다. 다음 공판은 6월 25일 오후 5시에 열린다. 검찰 측 증인으로 박 전 대표를 고발한 동물보호 활동가 박희태 씨와, 비글구조네트워크 유영재 대표가 출석할 예정이다.
박 전 대표는 지지자 10여 명에 둘러 싸여 퇴정했다. 과거에도 비슷했다. 개–고양이 수백마리를 몰래 안락사했다는 내부 폭로에 대해 2시간 동안 ‘항변 기자회견‘을 할 때도, 피고소인 신분으로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갈 때도,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출석할 때도, 박소연 전 대표는 늘 지지자들을 대동했다.
박 전 대표는 취재진들이 대기하고 있던 서울법원종합청사 앞에 섰다. 그는 이렇게 적힌 피켓을 양손에 들고 자세를 잡았다.
‘중국도 한다는 개식용금지, 대한민국은 안 하나요?’
그는 취재진 한 명, 한 명 눈을 보며 말했다.
“이 재판 과정 하나하나를 캠페인처럼 활용해 불합리함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략) 제가 (재판을) 승소하면 좋고, 패소해도 관계가 없습니다. 제가 만약에 (불법) 안락사로 인해서 처벌을 받게 된다면, 안락사 원인을 제공한 ‘개 도살’이 훨씬 더 위법하다는 판결이 결국 내려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 전 대표 옆에 선 한 여성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 기자가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은 이유가 있느냐”고 묻자 박 전 대표는 역시 길게 말했다.
“국내 동물권에 대한 부족한 인식 때문에 안락사를 범죄처럼 받아들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에 현장에서 동물권의 실태를 보며 가장 많이 체득한 사람이기 때문에 진심을 다해 재판부에 직접 호소하려 합니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약 10여분 간 이어졌다. 그는 <케어> 동물 안락사 행위의 ‘정당성‘, 개식용을 허용하는 ‘불합리한‘ 국내의 현실, <케어>의 투명한(?) 후원금 사용 등을 언급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케어>의 동물관리국장 출신인 공익신고자 임OO 씨는 박소연 대표의 지시로 2015년부터 동물 200여 마리를 몰래 안락사했다고 2019년 1월 폭로했다. 이전까지 <케어> 측은 “동물을 안락사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박소연은 비밀 안락사 사태 후 약 1년 만인 지난 2월 <케어> 대표직에서 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