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배를 위해 모였지만, 강하나(가명, 83년생) 씨는 고깃집에서 앉아 있질 못했다. 무슨 흥미로운 영상이라도 보는지, 강 씨는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스마트폰 화면을 슬쩍 바라봤다. 세상에나, 국회방송을 이토록 흥미롭게 보는 사람이 있다니.

“기자님, 20대 국회 끝나기 전에 양육비 법안이 통과되려나 봐요!”

‘양육비 이행 강화 법안’은 20일 오후 3시께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 국회 본회의로 올라갔다. ‘본방 사수’ 중인 강 씨의 스마트폰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양육비 이행강화 관련 일부개정법률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양육자 강하나(가명)는 국회 본회의 에서 ‘양육비 이행 강화 법안’ 통과 과정을 방송을 통해 보며 눈물을 흘렸다. ⓒ 셜록

본회의 참석 국회의원 158명 모두 찬성 표를 던졌다. 여야 이견 없는 만장일치 통과. 강 씨의 눈은 젖고, 코 끝은 빨갛게 변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스마트폰으로 국회방송을 보면서 운다.

강 씨는 전 남편한테 양육비를 못 받은 8년 세월, 혼자 키운 딸의 모습 등 여러 일을 떠올리는 듯했다. 밀린 양육비를 받으러 찾아갔다가 전 남편한테 폭행 당한 최근 일까지 말이다.

양육비 법안이 통과된 5월 20일, 시민단체 양육비해결총연합회(이하 양해연) 운영진 5명이 작은 파티를 위해 서울 강남의 한 고깃집에 모였다.

양해연 부대표인 강 씨는 양육비 약 5400만 원와 위자료 3000만 원을 받지 못해 8년을 싸웠다. 이혼 당시 두 살이었던 강 씨의 아이는 11살 초등학생으로 자랐다.

서울지역장인 A씨도 10년 넘게 양육비 한 푼을 못 받았다. 경기북부지역장인 B씨는 양육비 법안이 통과된 20일, 바로 그날 밀린 양육비 1000만 원을 한 번에 받았다.

언론대응을 담당한 C씨는 전 남편에게 매달 양육비 130만 원을 받고 있지만, 언제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며 살고 있다.

이영 양해연 대표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심각성을 공감하고, 작년부터 대표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함께 싸워온 ‘돌싱’들은 이날 서로 축하하고 격려했다. 각자가 처한 경제 상황과 양육 환경 등은 다르지만, 이들은 엄마로서 딱 하나를 위해 모였다.

‘아동의 생존권인 양육비 문제 해결.’

여성이자, 엄마이며, 돌싱인 이들의 노력이 끝내 법안 통과까지 이뤄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꽃길은 없었다. 

내가 ‘배드파더스’ 취재를 위해 처음 이영 양해연 대표를 만난 건 작년 11월이다. 이영 대표는 ‘배드파더스’ 국민참여재판을 앞두고,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 이행 촉구를 위한 시위를 준비했다.

당일은 아침부터 비가 왔고, 안개가 꼈다. 날씨 탓인지, 개인 사정 때문인지, 그날따라 양해연 회원들의 참석이 적었다. 오전 9시, 이영 대표는 아무도 오지 않은 법원 앞에서 혼자 현수막을 걸었다.

내가 현수막 끈 묶는 걸 도와주자, 이영 대표는 멋쩍은 듯 말했다.

“기자님, 제가 평생 엄마로만 살아 현수막 달고 피켓 시위하는 게 아직도 낯설어요. 예전에 광화문 근처에서 ‘양육비 지급 촉구’ 시위하는데, 양육자들이 경험이 없고 부끄러우니까 다들 피켓으로 얼굴부터 가리는 거예요. 양육비 문제가 뭐 당당한 일인가 싶어, 피켓 뒤에 숨어서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시위하고 그랬다니까요.”

이날도 이영 대표는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읽다가, 여러 번 눈물을 삼켰다. 양육비 안 주는 부모의 신상 공개가 과연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는 ‘배드파더스’ 재판 때도 그랬다.

‘배드파더스’ 사이트 자원봉사자인 구본창 씨는 양육비를 주지 않아 신상이 공개된 부모 5명에게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 재판에 넘겨졌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강하나 씨는 피고인 구본창 측 증인으로 1월에 열린 국민참여재판에 출석했다.

2019년 11월 15일, 구본창 <배드파더스> 자원봉사자가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양육비 이행 촉구를 위한 시위를 하고 있다. ⓒ셜록

강 씨는 전 남편의 신상을 <배드파더스>에 제보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재판부와 배심원단을 향해 설명했다.

“양육비를 받기 위해 국가기관인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4년간 이행명령, 채권추심, 재산명시 등 총 8개의 소송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전 남편은 가장 강력한 제재인 감치 10일 다녀온 후에도 양육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강 씨는 재판부 앞에서 준비해온 편지를 꺼내 읽었다.

“결과가 아닌 원인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홀로 양육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혼한 양육자는 혼자 힘으로만 아이를 키워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저는 아이가 아파도 일을 하느라 제때 병원에 데려가지 못했습니다. 학교 행사도 한 번 못 갔습니다. 엄마로서 아이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나, 법의 무능함에 좌절하고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

강 씨는 눈물을 쏟았고, 방청석의 다른 양육자들도 울었다.

강 씨의 간절함이 통했을까.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위를 공익 실현으로 판단하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 7명(예비 배심원 1명 제외)도 피고인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내렸다.

이 ‘배드파더스 재판’은 큰 변곡점이 됐다. 양육자들은 더는 숨지 않기 시작했다. 

강 씨는 양육비를 고의로 안 주는 전 남편을 아동학대 혐의로 지난 2월 고소했다. 현행법상 양육비 미지급이 아동학대 처벌 근거가 되긴 어렵지만, 선례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그는 수시로 1인 시위도 나갔다. 전 남편의 거주지, 일터, 지역 구청, 경찰청 등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는 전 남편의 얼굴 사진을 내걸고,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었다.

전 남편의 위장전입을 밝히기 위해 서류상 거주지인 그의 친척 집 앞에서 밤 12시까지 잠복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전 남편 일터 근처에는 무서워 가지도 못했어요. 그 근처만 지나가도 가정폭력 당했던 시절이 생각나서 얼마나 두려웠는데요. 제가 양육비 해결 단체와 힘을 합쳐서 나서니, 오히려 전 남편이 피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아, 얘도 나를 무서워 하는구나’ ‘더 이상 숨지 말아야겠다.’ 이렇게 다짐했죠!

시위를 시작한 작년 6월께부터, 전 남편은 양육비 60만 원 중 10만 원을 매달 주기 시작했다. 법원의 명령도 무시한 전 남편에게 시위 효력은 먹혔다.

강 씨는 양육자들과 힘을 합쳐 아예 국회도 뛰어다녔다. 양육비 법안 통과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린 지난 6일, 이들은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시민단체 양육비해결총연합회(대표 이영, 이하 양해연)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린 5월 6일 오전, 국회 정문 앞에서 20대 국회 회기 중 양육비이행 강화 법안 통과를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셜록

양육자들은 양육비 관련 법안을 발의한 20대 국회의원들과 법제사법위원회 의원들을 직접 직접 찾아가, 법안 통과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양육자들의 이런 노력과 싸움 덕에, 양육비 이행 법안이 20대 국회 문턱을 넘었다.

통과된 법안의 핵심 내용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양육비 부담 의무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여성가족부장관이 지방경찰청장에게 운전면허를 정지처분을 요청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정부는 양육비를 받지 못해 위기에 처한 가정을 한시적으로 우선 지원하고, 후에 양육비 채무자에게 국세체납 처분에 따라 징수할 수 있다.

사실 이번에 통과된 ‘운전면허 정지’ 법안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해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양육비 불이행시 제재를 해왔다. 미국 11개 주는 1886년부터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형사범죄로 규정했다. 미국은 운전면허증 외에도 전문자격증 등을 정지, 취소하기도 한다.

독일 역시 양육비 미지급이 지속될 시 최장 3년의 징역형을, 프랑스에서는 한화 약 1900만 원의 벌금과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다.

반면, 한국 사회는 ‘배드파더스’ 사이트가 주목을 받고나서야, 강제력이 없는 양육비 제도의 허점이 드러났다.

미흡한 법이 문제였다. 수십 년간 양육비를 주지 않아도, 현행법상 미지급자를 처벌할 규정은 없다.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제재는 감치 정도다. 이 마저도 잠적, 위장전입 등으로 경찰이 미지급자를 구인하지 못하면 이행될 수 없다.

이혼한 한부모 가정 중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비율(2018년 기준)이 약 80%에 달하는 건 이런 배경 탓이 크다.

새로운 법이 생겼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양육비 미지급자를 강하게 제재하는 법안 – 출국금지, 명단공개, 형사 처벌 등 – 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양육비 문제 해결이 더딘 이유는 명확하다.

‘개인의 일로 여기니까.’

실제 양육비 법안은 오히려 정부가 나서 반대했다. 경찰청은 양육비와 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운전면허 정지를, 법무부는 ‘양육비는 이혼 가정의 민사 문제’라는 근거로 양육비 미지급자 신상공개와 출국금지를 반대했다.

양육비는 양육자의 권리이자, 아동 생존권과 직결된다는 인식은 아직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양육자 강 씨가 밀린 양육비를 받기 위해 전 남편을 찾아갔다가, 폭행을 당했던 그때도 그랬다. 동대문소방서는 칼을 든 가정폭력 가해자이면서 8년간 양육비를 주지 않은 전 남편의 점포 앞에 ‘의용소방대원 명패’를 달아줬다.

강 씨는 현장에 있던 김현 동대문소방서장에게 “저 사람이 양육비 미지급자인 건 아느냐”고 항의했고, 김 서장은 딱 잘라 이렇게 말했다.

“(양육비는) 개인 일인데 왜 여기와서 이러세요!”

가정폭력이 가정 문제로만 취급해 국가가 간섭하지 않았는 것처럼, 아동의 생존권이 걸린 양육비 문제도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일로 방관되어 왔다.

강 씨처럼 가만히 있지 않는 엄마들, 양해연 같은 단체의 노력으로 그 ‘개인적인 일’이 조금씩 공적인 사안이 되고 있다.

<셜록>이 양육비 문제를 취재한 지 6개월, 새 법안이 국회를 넘었으니 세상은 벌써 6개월 이전과 달라졌다. 양육비를 못받아 발을 구르고, 피켓 시위도 어려워하던 엄마들의 표정도 달라졌다. 이들은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매고 있다.

5월 20일 ‘돌싱들의 파티’는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