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에 능숙해지는 건 슬픈 일이다. A 씨는 동맥에서 산소포화도 등을 살펴보기 위해 환자 사타구니에 굵은 주삿바늘을 꽂아 피를 뽑았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A 씨는 이 불법을 1년에 적어도 200번 가량 했다. 응급실에서 이 일을 A 씨만큼 잘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이 일을 할 때마다 A 씨는 범법자가 됐다. 동맥혈가스 검사라고 불리는 ABGA 검사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의사만 ABGA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실수 한 번으로 사람 생명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 ABGA 뿐이랴.

병원이 A 씨에게 맡긴 무면허 의료행위는 많았다. 비뇨기에 소변을 배출시키는 줄을 꼽고, 항문에 손가락을 넣어 직장 상태를 살피는 일이 그 중 하나다. 소변 줄을 꼽는 도뇨관 삽입과 직장수시검사는 의사나 간호사가 하는 일이다.

A 씨는 의사도 간호사다 아니다.

그는 전라남도 순천에 위치한 성가롤로 병원에서 일하는 응급구조사였다. 지금은 퇴사했다.

성가롤로 병원은 600병상 규모의 전남동부권 최대 의료시설이다. 현재는 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가 운영하고 있고, 2016년 8월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됐다.

가슴이 뛰는 설레는 일이어서 시작한 병원 일이었다. A 씨는 전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 병원에서 일하는 게 큰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불법으로 만들어진 자부심은 거품처럼 금세 꺼졌다. 걱정은 날로 커졌다.

‘누군가 신고할까봐 남몰래 환자를 살려야 하다니.’

전남 순천 성가롤로 병원. ⓒ 이명선

사실 응급구조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는 하루 이틀 문제가 아니다. 순천 성가롤로 병원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A 씨를 비롯한 성가롤로 병원 응급구조사들은 의료인력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현재의 상황을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법으로 규정된 응급구조사가 할 수 있는 일은 14가지에 불과하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르면 응급구조사는 심폐소생술, 심박·체온 및 혈압 등의 측정, 사지 및 척추 등의 고정, 인공호흡기를 이용한 호흡 유지 등의 업무만 할 수 있다.

응급구조사가 무능해서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의료현실에 맞게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를 조정해야한다고 말한다. 의료인 채용에 난항을 겪고 있는 병원이 늘어나면서, 응급구조사에게 더 많은 업무범위를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입법도 추진된 적이 있다.

불법이고 합법이고 간에, 수년 전부터 순천 성가롤로 병원 응급구조사들은 밀려드는 업무량을 견딜 수 없었다. 환자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의사나 간호사가 해야 하는 일을 하나씩 맡다 보니, 응급실이 아닌 병동에서마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

성가롤로 병원 응급구조사들이 응급실이 아닌 병동에서 벌이는 무면허 의료행위만 해도 연간 6000건이 넘었다. 병동에서만 연간 평균 1천여 건에 달하는 ABGA를 했다.

의사만 해야 하는 봉합도 직접 했다.

응급구조사들이 병동에서 실시한 무면허 의료 행위를 집계한 표

응급구조사들이 부서장인 김아무개 진료지원부장에게 찾아간 것 2016년 1월. 응급구조사의 직무기술서에 무면허 의료행위를 당당히 적어놓고, 직접 사인하라고 요구하자 응급구조사들은 김 부장을 찾아 “사람이라도 더 뽑아달라” 요구했다.

“응급구조사를 더 뽑아주십시오. 그럼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당시 순천 성가롤로 병원의 응급구조사는 총 7명이었다.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순천 성가롤로 병원은 응급구조사를 필수로 두어야 한다. 1급 응급구조사를 5명 이상 채용해야 하는데, 구급차 1대당 2명 이상 추가로 채용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총 7명의 응급구조사가 일했다.

응급실과 병동을 오가며 일하기에는 7명은 턱없이 부족했다. 연차를 수년째 쓰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장도 맘대로 갈 수 없었다. 남들처럼 1년에 한 번 휴가라도 갈 수 있게 사람만 더 뽑아주면 소원이 없다고 생각했다.

순천 성가롤로 병원 응급구조사의 직무기술서. ‘직무 내용 및 책임’에 무면허 의료행위가 다수 적혀있다.

진료지원부장이 자신들의 심정을 헤아려 줄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김 부장은 그 어떠한 변화도 보장하지 않았다. 최금순 당시 병원장에게 면담을 신청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였다. 2016년 12월, 수녀인 최금순 병원장을 찾아가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수녀님. 저희는 목을 내놓고 일하고 있다는 점 알아주십시오. 병동 업무까지 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큽니다.”

병원장 면담에서는 무면허 의료행위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먼저 환자에게 위험하다고 말했다. 더불어 환자 신고로 병원과 의사, 응급구조사가 처벌 받은 사례가 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성모병원과 동탄성심병원을 비롯한 많은 병원에 문제가 불거졌다.

병원장도 진료지원부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고 답했다. 응급구조사들은 거의 자격증을 내놓고 일하는데, 병원장은 그 고통을 알아주지 않았다. 무면허 의료행위를 하다가 걸리면 어떻게 대응할 건지에 대한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병원 분위기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응급구조사들은 ‘불법을 하기 싫다‘는 상식적인 말을 병원 측에 전달한 것뿐인데, 일부 의사와 간호사는 응급구조사들을 ‘일하기 싫어하는 애들‘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ABGA와 같은 업무가 응급구조사에서 간호사로 바뀌자 간호사들의 불만은 커졌다. 사실 ABGA는 간호사도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일부 간호사들로부터 받는 불편한 시선은 응급구조사들에게 스트레스였다.

 

성가롤로 병원 간호사가 동맥혈 가스검사(ABGA)를 하는 모습. 원래 응급구조사 업무였다가 현재는 간호사들이 이 일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맥혈 가스검사는 의사만 할 수 있는 의료행위다.

그로부터 2년 뒤 사건이 터졌다. 2019년 3월, 물에 빠진 환자가 응급실에 찾아왔다. 교통사고로 차량 전체가 물에 빠지면서 운전자의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다. 익수자의 체온을 올리는 동시에 수시로 심장을 살피는 일이 중요했다.

익수자의 심장이 이상해진 건 의사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갑자기 부정맥이 생기자, 당장 누군가 심장에 전기 충격을 가해야 했다. 과거에도 비슷한 상황이 터지면 의사 지시하에 응급구조사가 심장충격기로 환자를 살리곤 했다.

얼마를 기다려도 의사는 보이지 않자, 결국 B 씨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심장충격기를 들고 익수자의 심장에 전기 충격을 가했다. 평소 응급구조사가 했던 일이었고, 촉각을 다투는 상황이어서 응급처치가 필요하기도 했다.

최 병원장의 지시에 따른 행동이기도 했다. 실제로 최금순 전 병원장은 2018년 1월 B를 포함한 성가롤로 응급구조사들 앞에서 “내 일 네 일 구분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B 씨는 최 병원장의 말을 떠올리며 전기충격기를 익수자의 몸에 갖다 댔다.

 “내 일 네 일 구분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의사 선생님들이 오버된 요구를 많이 했잖아요. 응급구조사 면허에 명시된 일만 딱 한다면, 의사 선생님이 넘치게 일을 하게 되는 거예요.” – 2018년 1월 24일 최금순 전 병원장

B 씨의 노력에도 익수자는 결국 숨을 거뒀다. 그 후 상황이 뜻밖으로 돌아갔다. 김 센터장이 익수자 죽음에 대한 책임을 B 씨에게 물으려고 한다는 말을 진료지원부장을 통해 들었다.

응급구조사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껏 병원은 응급구조사에게 아무렇지 않게 무면허 의료행위를 시켰다. 응급구조사가 심장충격기를 사용한 일은 흔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직접 응급구조사에게 심장충격기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니 병원은 돌변했다.

사실 말과 행동이 다른 병원 측 태도는 이전에도 있었다. 익수자 사건이 터지기 얼마 전, B 응급구조사는 코피가 나서 응급실로 온 환자에게 단단한 거즈를 코에 넣는 일명 나잘 패킹(nasal packing)을 했다. 그때도 응급의학과 의사가 책임을 회피했다.

나잘 패킹 또한 시행규칙에 나온 응급구조사의 일이 아니다. B 응급구조사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의사로부터 지시 받아 환자에게 나잘 패킹을 했다. 하지만, 환자가 고통을 호소하자 해당 의사는 응급구조사 B 씨를 가리키며 환자 보호자에게 이렇게 외쳤다.

“저 사람이 했으니까, 저 사람한테 따지세요.”

간호사가 동맥혈가스검사(ABGA)를 수행하는 동안, 응급실 의사들이 이를 지켜보는 모습.

A 씨는 두 얼굴의 병원 태도를 본 뒤 병원에서 벌어지는 일과 대화를 기록했다. 병원장은 말로만 “일을 가리지 말고 도우라” 하고, 문제가 터지면 책임을 회피했다. 

혹시 모를 문제의 책임을 따지기 위해서는 증거를 남겨야 했다. A씨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날짜를 하나하나 적었다. 김철 센터장의 말도 A 씨가 기록한 것 중 하나다. 김 센터장은 병원장을 비롯한 수뇌부와 응급구조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적으로 응급구조사는 응급의료인이기 때문에 의사가 시키는 것을 모두해도 됩니다.”

이는 틀린 말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나오지 않는 행위를 응급구조사가 했을 경우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는 많았다. A 씨는 어쩔 수 없이 센터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병원 안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A 씨는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일이 합법인지 아닌지를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2016년 초 병원 측에 처음 문제 제기했을 때만 해도 “사람만 더 뽑아주면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말했지만, 3년 간 병원은 무면허 의료행위를 계속 시켰다.

병원이 끝내 바뀌지 않자 A 씨는 병원을 나왔다. A 씨뿐만 아니라 숱한 응급구조사들이 꿈의 직장이라 생각하고 입사했던 성가롤로 병원을 스스로 떠났다. 누군가는 원무부로 보직이 바뀌어 원무부에서 퇴사를 했고, 누군가는 정신적 피해를 호소하며 스스로 병원을 나왔다.

전남 순천 성가롤로 병원. 2016년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됐다.

병원의 비밀은 오래가지 않았다. 2019년 12월, 응급구조사와 간호사에게 무면허 의료행위 지시를 하는 성가롤로 병원과 이를 지시한 의사들을 고발하는 신고서가 경찰에 접수됐다. 순천경찰서는 지난 20일 성가롤로 병원을 압수수색했고, 현재 관련자들을 소환 중이다.

과연 A 씨는 이 상황을 어떻게 볼까. 만약 병원이 “법적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질 테니 환자부터 살리라“고 약속하고, 센터장과 의사들이 약속대로 행동했더라면 A 씨는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동료들이 억울하게 경찰 조사를 받는 것도 지켜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A 씨는 재발 방지를 위해 이 사실을 <셜록>에 털어놓았다. 성가롤로 병원을 비롯한 많은 병원이 의료인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응급구조사와 간호사에게 사실상 목을 내놓고 무면허 의료행위를 강요한다. A 씨는 병원의 갑질을 바로잡기 위해 나섰다.

한편, 성가롤로 병원은 불법 의료행위 지시 의혹에 대한 <셜록>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성가롤로 병원 홍보팀은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 할 말이 없고, 원무부가 해당 사안에 대해서 잘 알 것“이라는 말했다. 원무부장은 기자와의 접촉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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