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양육비를 안 주고 아이도 찾지 않은 전 남편이 감치 기로에 놓였다가 풀려났다. 경찰이 결정적인 잘못을 했다.
꼬박 7년을 기다렸지만, 경찰의 의사는 분명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법원에서 보낸 감치 집행문이 없습니다. 사실상 죄가 없는 전 남편을 계속 데리고 있을 수 없습니다. 그만 풀어주겠습니다.”
싱글맘 박하늘(가명, 87년생) 씨는 억울했다. ‘내 사건 조회‘에선 부산동부경찰서가 집행장, 감치결정등본 등을 6월 17일에 송달받았다고 떴다. 박 씨는 갖고 있던 감치명령서 ‘정본‘도 경찰에 확인해줬다.
박 씨는 경찰이 갖고 있는 서류를 다시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일에만 8시간 잠복 끝에 겨우 찾은 전 남편 아닌가.
경찰의 답은 같았다.
“감치 집행문이 없습니다!”
결국 박 씨는 7년간 양육비를 미지급한 전 남편을 눈 앞에서 놓아줬다. 2020년 7월 15일의 일이다.
반전은 다음날 일어났다. 부산동부경찰서는 분노로 밤을 새운 박 씨에게 연락해 이렇게 말했다.
“어제 당직 경찰관이 오해를 한 듯합니다. ‘민사 등기’를 확인하지 않아서 감치 집행문을 송달받지 못한 걸로 착각했네요.”
경찰의 실수로 7년간 양육비 안 준 전 남편을 놓친 상황. 박 씨는 공권력에 배신감을 느꼈다.
“제가 직접 전 남편의 행방을 알아내 경찰서로 연계했는데도, 실수로 놓친 거잖아요. 이제 상대는 법의 허점을 알아차리고 더 숨어 다닙니다. 경찰은 전 남편을 잡기 위해 노력하겠다지만,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박하늘–강수한(가명, 80년생) 씨는 2012년에 결혼해, 2014년 9월 협의 이혼했다. 두 아이에 대한 친권과 양육권은 엄마 박 씨가 맡았다. 이혼 당시 첫째 미나(가명)는 3살, 둘째 미준(가명)은 태어난 지 두 달이 채 안 됐다.
양육비는 2014년 9월부터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1인당 월 100만 원으로 합의했다. 강 씨의 소득 수준을 고려해 서로 협의한 결과다. 아빠가 아이를 만나 교류하는 시간인 면접교섭은 매주 첫째, 셋째 주말로 정했다.
하지만 강 씨는 이혼 직후부터 아이들을 보지 않았다. 약속한 양육비도 지급하지 않았다.
박 씨는 2015년 상반기에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을 제기했다. 이행명령 판결에도 상대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자, 그는 감치 재판을 신청했다. 그제서야 전 남편은 밀린 양육비 300만 원을 박 씨에게 한 번에 지급했다.
어려움은 지속됐다. 전 남편은 아예 휴대전화 번호를 바꿔버렸다. 이혼 2년만인 2016년에는 양육비 감액 소송도 진행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양육비는 아이 한 명당 50만 원으로 감액됐다.
“전 남편은 애초에 양육비를 제대로 준 적도 없으면서 감액까지 신청하더군요. 본인 경제 상황에 맞춰 감액된 양육비라도 줄까 싶어 기대했지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양육비 줄 마음이 전혀 없는 겁니다.”
감액 소송 이후에도 전 남편은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박 씨는 하는 수없이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부터 다시 시작했다. 2017년 기준, 박 씨가 받지 못한 양육비는 약 4400만 원.
소송 4년차에 접어들어도, 박 씨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양육비를 못 받은 지 약 7년이 지난 올해 2월, 그는 <배드파더스> 사이트에 전 남편의 신상과 얼굴을 공개했다. 전 남편의 연락처도, 실거주지도 모르는 그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박 씨 입장에서, 전 남편은 양육비 줄 경제적 능력이 충분했다. 전 남편 강 씨는 혼인 당시 본인 모친과 함께 자영업을 했다. 이혼 이후에도 곧바로 재혼해 새 가정을 꾸릴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양육비는 부모로서 자식을 책임져야하는 당연한 의무 아닌가.
박 씨는 전 남편 연락처를 어렵게 알아냈다. 약 4년 만에 전 남편과 닿은 연락. 하지만 그는 양육비 지급을 촉구하는 박 씨에게 함부로 말했다.
“진짜 줄 돈도 없고 니 새끼들 관심 없다. 자식으로 생각 안 하고 내 인생 최대 오점이 너네 셋이야. 키울 돈 없으면 둘 다 보내. 내가 텃밭을 가꿔서라도 먹여 키울 테니까.”
상대의 태도에 박 씨는 법원에 감치를 신청했다. 감치는 현행법상 양육비 지급을 압박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다. 법원은 정당한 이유없이 양육비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채무자에게 30일 범위 안에서 감치를 명령할 수 있다.
부산가정법원은 6월 12일 양육비 ‘이행의무위반‘을 이유로 전 남편 강 씨를 15일간 감치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2020년 7월 기준, 박 씨가 받지 못한 양육비는 약 8700만 원이다.
박 씨는 직접 발로 뛰어다녔다. 전 남편을 구인하기 위해 그의 실거주지 주변에서 잠복했다. 한 달 동안 매주 최소 3회. 한 번 잠복할 때마다 최대 8시간을 투자했다.
부산동부경찰서는 지난 15일 박 씨가 인계한 양육비 미지급자 강 씨를 실수로 풀어줬다.
경찰서 관계자는 “감치대상자를 형사계로 데려갔는데 야간이라 해당 부서에서 (감치명령서를) 찾지 못했다. 이튿날 여청과에서 보관중인 것을 확인했다”며 “당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강 씨를 가둬둘 수 없었다. 강력범도 아니어서 귀가를 시킨 것이다”고 해명한 걸로 알려졌다.
박 씨는 억울한 마음에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도 썼다. 제목은 감치로 잡은 배드파터, 경찰의 무능함으로 풀어줘서 너무 억울합니다. 7월 22일 오전 9시 기준, 청원 참여 인원은 600명을 돌파했다.
“혼자서 아이 둘 돌보고, 일도 하면서 전 남편까지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제 개인 시간과 잠을 줄여가면서 희생하는 거죠. 이렇게 힘들게 잡은 전 남편을 경찰이 실수로 풀어줬다니, 정말 피가 거꾸로 솟습니다. 양육비를 특수한 채무로 보고, 국가가 직접 나서서 감치를 이행해주면 좋겠습니다.”
이번 사건은 박 씨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감치 제도는 여러 허점이 있다.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감치 결정은 민사소송에 해당해 경찰이 강제구인 하기 어렵다. 영장을 발부 받아 집행하는 형사 사건과 달리, 의무위반자의 의사가 중요하게 고려된다. 의무위반자가 자발적으로 경찰서로 따라가지 않는 한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감치 판결 이전 절차도 문제다. 잠적, 위장전입 등으로 양육비 미지급자의 주소지가 실거주지와 다를 경우 송달조차 어렵다. 의무위반자가 소송 서류를 송달받지 않으면, 재판조차 무효화 될 수 있다.
강효원 법무법인 숭인 변호사는 “의무위반자가 위장전입하거나 잠적하여 소송 서류를 받지 않을 경우, 일부 법원에서는 의도적으로 송달을 회피하거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사실을 소명하면 ‘공시송달‘로 감치 인용결정을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재판이 각하되거나 기각되는 사례가 많다“고 지적했다.
‘공시송달‘은 다른 송달 방법을 선택할 수 없는 경우에 이뤄지는 최후의 수단이다. 당사자의 행방을 알기 어렵거나 상대의 거주지가 불명확해서 송달을 실시할 수 없을 때 법원 게시판에 소송 서류을 2주간 게시해 송달하는 방법이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송달이 이뤄진 걸로 간주하고 후속절차가 진행된다.
강 변호사는 “감치는 의무위반자를 교정시설에 유치하는 제도라서 법원에서 인용결정을 내리는데 신중한 편“이라면서 “현행법상 감치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양육자가 제발로 뛰어다닐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구본창 <배드파더스> 사이트 자원봉사자는 “상대가 송달을 거부하면 감치 판결조차 받기 어려운 현실에서 추후 발의되는 법이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구 씨는 “이번에 개정된 운전면허 정지 법안도 법원에서 감치명령 결정을 받은 이후 진행할 수 있는 절차“라면서 “추후 발의되는 법의 실효성을 위해선 현행법상 가장 강력한 제도인 감치의 허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치 집행 유효기간은 6개월. 이 기간 내에 전 남편을 찾지 못하면, 박 씨는 ‘이행명령‘ 소송 등 법적 절차를 다시 처음부터 밟아야 한다.
출구가 안 보이는 싸움 속, 박 씨는 오늘도 전 남편의 행방을 찾으러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