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 피해자들이 ‘빚고문’에서 벗어날 실마리가 잡힐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는 27일 인사청문회에서 “인혁당 피해자의 국가배상 대법원 판결은 굉장히 잘못됐다”면서 “국정원장에 취임하면 정의롭게 하겠다”고 밝혔다.

<셜록>은 탐사 기획 보도 ‘고리대금업자 국정원’을 통해, 국정원으로부터 빚고문을 당하는 인혁당 피해자들의 사연을 보도해왔다. 2017년 6월부터 이어진 3년간의 보도는 책 <거래된 정의>로 출간됐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가 대항 사건 해결을 약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프레시안 최형락

국정원은 2013년 7월 인혁당 피해 가족 77명에게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 후 반환금을 돌려주지 않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부동산 강제경매를 진행했다.

고 나경일 가족의 집은 지난해 5월 경매로 넘어갔다. 이창복, 추국향, 전영순 집은 경매에 팔릴 위기에 처했다.

국정원이 내세운 근거는 2011년 1월 대법원 판결이다. 대법원은 인혁당 생존 피해자들에게 지급된 배상금 이자 계산이 잘못됐다며 34년 치 이자를 삭제했다. 당시 대법원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때부터 이자 계산을 하면 금액이 너무 커 줄 수 없다”는 식의 근거를 들었다.

배상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붙는 지연이자율은 연 20%에 달했다. 연 5%의 지연이자가 과하다는 이유로 34년 치 이자가 없어졌는데, 금액을 반환할 때에는 연 20%의 이자가 붙었다. 연 20% 이자는 빚을 눈덩이처럼 불렸다. 돌려줘야 할 돈이 받은 돈을 넘어섰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청문위원 질문을 듣고 있다. ⓒ프레시안 최형락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7일 국정원장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대법원 판결로 인혁당 피해자들이 돈을 토해낼 처지에 처한 것을 아느냐”고 박 후보자에게 물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이렇게 답했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은 났고, 국정원에서 문제를 제기해서 재판에 계류 중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굉장히 잘못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이러한 불행한 역사를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계속 의견을 내서 사법부가 현명한 판단을 하고, 국가 공권력에 따라서 피해당한 사람들에게 배상이 진정으로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박 후보자는 2013년 국회 법사위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인혁당 피해자 국가배상 대법원 재판에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 후보자는 당시 이야기도 언급했다.

제가 국회에서 법사위원을 하면서 법원행정처나 또 정보위원을 하면서 국정원에 많은 유감 표명을 했습니다. (중략) 만약에 국정원장에 취임하면 반드시 그러한 문제를 검토해서 정의롭게 하겠습니다.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법원의 조정 및 화해 권고가 있었는데도 국정원이 계속 거부해서 해결 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후보자는 다시 한 번 해결 의지를 보였다.

“우리 원에서도 기계적으로 해석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제가 만약 원장으로 취임하면 의지를 가지고 법 정신에 따라서 잘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프레시안 최형락

인혁당 피해자들은 박 국정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실시간 시청했다. 경매로 집이 넘어갈 위기에 처한 이창복 씨(87세)는 박 후보자의 해결 의지를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이 씨는 인혁당 사건에 휘말려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국가폭력 피해자다.

이 씨는 지난해 5월, 법원에 ‘국정원의 강제경매집행을 멈춰달라’며 청구이의 소송을 제기했다가 1심에서 패소했다. 2심에서 법원이 국정원에 “지연이자는 면제하고 이 씨가 부당이득금 원금 4억9000만 원 중 2,500만 원을 먼저 갚으면 경매를 취하하자”고 제안했지만, 국정원은 이를 거절했다.

“우리의 고통을 그래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생각에 부인과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극한의 고통을 준 가해자 국정원이 화해의 손길을 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법원이 화해 권고를 내려, 다시 한번 국정원과 조정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영순 씨도 울면서 청문회를 봤다고 말했다. 인혁당 피해자 고 전재권 씨의 딸인 전 씨는 국정원으로부터 아파트는 물론이고, 은행 계좌 7개를 압류당했다. 그는 경매로 넘어간 아파트에 딸린 대출 이자를 지금도 갚고 있다. 전 씨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파산 일보 직전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제가 고통받은 기간이 45년이 넘습니다. 대학생이던 저는 60대 중반의 할머니가 됐습니다. 이자만 내지 않는다고 조정해도 좋으니, 이제 모든 걸 끝내고 싶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국정원장 후보자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인혁당 피해자들을 위한 단체 ‘4·9통일평화재단‘의 안경호 사무국장은 국정원의 결자해지를 강조했다.

“1974년 이 사건이 조작되지 않았다면, 사형도 억울한 옥살이도 없었을 겁니다. 이 밖에도 40여 년간의 고통도, 재심도, 국가배상 소송도,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도, 강제경매집행도 없었을 겁니다. 국정원 자신이 원인 제공자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인지하고, 고통의 사슬을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창복, 전영순, 그리고 고 정만진 씨의 아내 추국향 씨는 지난해 ‘국가정보원의 강제경매집행을 멈춰달라’며 청구이의 소송을 제기해 현재까지 소송 중이다. 이 씨의 2심 선고는 오는 9월 17일에 나올 예정이다. 전 씨의 1심 선고는 오는 8월 1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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