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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84살 노인 집을 압류하다
“이창복 씨 계십니까?”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며칠 전이다. 유달리 추웠던 지난 2월 말,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남성이 이창복(84)의 집⋯
이명선2018.02.26 -
민주투사의 보상받지 못한 34년
동대구역에서 내려 강창덕 선생님을 뵈러 가는 택시 안. 택시기사는 걸쭉한 사투리로 지난 대선을 회상하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이명선 -
국정원에 13억 원 빚을 진 노인
대한민국이 내게 소송을 걸었다 아침 7시, 서울역에서 동대구역으로 향하는 KTX 열차 안. 이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 내게 벌어졌다고 상상해봤다. 좀체 감이 서지 않았다. KTX 간이 테이블 위에 소장 하나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원고에는 대한민국, 피고에는 90세 노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부당이득반환 청구였다. 쉽게 말해 대한민국이 90세 노인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왜 국가는 100세를 바라보는 어르신에게 돈을 내놓으라는 걸까? 도대체 어르신이 부당하게 취한 돈이란 뭘까? 궁금증은 동대구역에 도착할 때까지 해소되지 않았다. 구불구불한 대구 봉덕 시장 옆 골목을 뚫고 어렵게 주소지를 찾아냈다. ‘종합신발백화점’이 나타났다. 바로 옆 녹슨 철문을 여니 낡은 다세대 주택이 나왔다. 시멘트 마당을 ‘ㄷ’ 자로 둘러싼 허름한 2층 집. 오늘 만나기로 한 90세의 강창덕 선생님이 이곳 1층에 사신다. “좀 누추하지요? 그래도 보증금 300만 원에 월 30만 원짜리 월세방 치고는 괜찮습니다.” 숨이 턱 막히는 집안 열기가 나를 먼저 맞았다. 문 밖의 쨍한 햇볕은 현관을 통과하지 못했다. 살림살이는 여느 집과 다를 바 없었지만 책상이 시선을 확 끌었다. 빼곡한 책들 사이로 한반도기가 꽂혀 있었다. 신문기자 출신답게 시사 주간지와 신문이 책상 주변에 많았다. 안중근 의사의 글귀도 보였다. 견리사의 견위수명(見利思義 見危授命). ‘눈앞 이익을 보면 대의를 생각하고, 나라의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의 한자가 포스트잇에 적혀 있었다. 책상은 결의의 문구로 가득했다. ‘애국 결의를 하시는 노인에게 왜 국가는 돈을 토해내라는 걸까.’ 의구심은 씻어지지 않았다. 강창덕(90) 선생님의 방. 침대 한 편에 일간지와 주간지가 쌓여있고, 책상 위에는 펜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셜록 국정원이 모두 뺏어갈 낍니다 강 선생님은 지팡이에 의지해 꼬깃꼬깃해진 종이를 힘겹게 꺼내셨다. KTX 안에서 본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장이었다. ‘원고 : 대한민국’이 또다시 나를 압도했다. 선생님 손가락은 ‘소관청 : 국가정보원‘으로 향했다. ‘법률상 대표자 : 법무부 장관 황교안’도 짚으셨다. 늘 그러셨다는 듯 한숨과 함께 마른 세수를 하셨다. 요약하자면 이랬다. 2013년 7월 대한민국 중앙행정기관 국정원은 아흔 살의 강창덕 선생님에게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걸었다. “내가 국정원에 돈 빌린 적이 읍는데 내라는기 말이 됩니까?” 법원은 국정원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중앙지법은 2013년 10월 강 선생님에게 6억 8,900만 원과 함께 이자까지 내라고 했다. 법정이자율 5%까지 고려하면 금액은 판결 시점기준 8억 3,300만 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선고 다음날부터 이자가 4배로 뛰었다는 사실이다. 2011년 11월 강창덕(90)선생님이 받은 최고서. 당시 서울고등검찰청은 강 선생님에게 6억 8,900여만 원의 돈을 1개월 이내에 반환하라고 했다. ⓒ셜록 연 20%의 연체 이자율로 현재까지의 빚은 13억 3,300만 원이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갔다. 숨만 쉬고 있어도 하루에 37만 7,700원 이자가 붙었다.⋯
이명선 -
‘우리도 싸우고 있다’는 당신에게
종편 기획 에필로그입니다. 기획이 마무리 될 무렵 여러 언론에서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고민 끝에 거절했습니다. 대신 이곳에 그동안 말하지 못한 소회를 풀어놓습니다. 사람을 잃고, 얻다 친했던 전 직장 동료 몇 명이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끼니를 거를 정도로 괴로웠다. <나는 왜 종편은 떠났나> 기획 시작 이후 많은 사람을 잃었다. 종편이 옳은 방향으로 바뀌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기획이지만, 종편에 남은 일부 조직원들은 자신을 저격한다고 여겼다. 처음 이 기획을 제안받았을 때 극구 거절했던 이유도 이런 염려 때문이다. ‘직업인’ 개인, ‘정을 나눈’ 개인을 분리해낼 자신이 없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북풍몰이’를 하는 종편의 보도가 잘못됐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할 수 있어도, 해당 보도를 한 기자가 나와 살을 부대낀 동료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쉽지 않았다. 주제에 맞는 예시를 찾았는데 해당 기자가 친한 동료면 망설여졌다. 인간관계가 끊어질 것을 감수해야 했다. 사실 퇴사 이후에도 회사에 남은 사람들, 다른 종편으로 이직한 많은 이들과 가깝게 지냈다. 혹자들은 종편을 하나의 괴물로 봤지만, 내게는 나와 호흡을 함께한 동료들이 속한 집단이다. 종편 기획에서 등장하는 대부분의 기자가 내게 호의적이었다. 기사를 마감하면 밤새 같이 코가 비틀어질 때까지 부어라 마셔라 술을 들이켰고,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후배인 나의 끼니를 매번 부담한 선배도 많다.⋯
이명선 -
‘오보 면책 특권’ 종편 북한 기사
퇴사 후 만난 동료의 표정은 밝았다. 호탕한 웃음소리도 그대로였다. 심신이 힘들어 여러 병원을 다녔던 과거와 비교하면 그는 확실히 행복해 보였다. 음식점에 들어서자마자 식사 메뉴를 재빨리 주문하고 그간 못다 한 얘기를 풀어놓을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화기애애함 속에서 몇 분 대화가 오갔다. “요즘도 힘드세요?” “아니요. 퇴사하지 않고 견디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말을 듣고 순간 젓가락질을 멈췄다. 그는 힘든 시기를 견뎌내고 지금의 자리에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내가 알던 그가 맞나‘ 싶었다. 불과 1년 전과 비교하면 그는 많이 달라졌다. 회사 보도 방향에 늘 불만을 토로했던 그다. 울기도 했다. 각자 퇴사 후 ‘플랜 B’를 서로 논의할 정도로 ‘퇴사가 답’이라는 말도 자주 했었다. 갸우뚱거리는 머리를 애써 고정했다. 안 본 지 1년 사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혹시 나의 퇴사가 회사에 충격이라도 줬나? 의아함을 참지 못했다. 견디길 잘한 그 이유를 되물었다. “왜 견디길 잘했다고 생각하세요?” “예전보다 일에 많이 적응됐고, 이전 부서에 비해 일찍 퇴근하는 편이예요.“ 그의 말 곳곳이 불편했지만, 말꼬리는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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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구속, 반성 없는 언론
기자는 대개 출입처로 출근한다. 청와대, 국회, 민간 기업 기자실까지 다양하다. 출입처 제도의 본래 목적은 가장 가까이에서 권력의 부패와 전횡을 감시하기 위함이다.⋯
이명선 -
‘기레기’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왜 기자들은 선캡을 쓰고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인 척했을까? 왜 기자들은 무분별하게 유가족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댔을까? 세월호 참사 이후 기자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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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편의 ‘성골 진골’을 아시나요?
컴퓨터그래픽(CG)를 맡기러 10층에 내려갔다. 웬일인지 복도가 고요했다. 기분 좋은 수다 소리로 가득하던 평소와 많이 달랐다. 벽걸이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 소리만이⋯
이명선 -
‘치킨 주문’ 특종, 후배가 불쌍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채널A 이명선 단독’이라고 쳐봤다. 단독 기사는 19개뿐이다. ‘단독‘을 남발하는 종편 바닥에서 3년간 고작 19개의 단독을 썼다는 것은, 밥값 노릇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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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음란 영상을 찾았나
입사 3년 차가 되자 아무 생각 없이 좀비처럼 집과 회사를 오갔다. 회사 보도가 어떻게 굴러가든 상관하지 않았다. 자사 뉴스도, 심지어 내 기사도⋯
이명선 -
문재인 오보, 나는 ‘대리 기자’였다
‘목소리를 빌리다’는 방송계 은어다. 기사 쓸 사람은 정해졌는데, 읽을 사람이 없을 때 누군가에게 ‘목소리를 빌려달라’고 한다. 부탁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쓴⋯
이명선 -
자랑스러운 딸은 ‘기레기’였다
우리 회사는 별명이 많았다. 개국 전부터 대중의 관심이 대단했다. 내가 입사했던 2011년 가을, 회사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대략 이러했다. 불법, 편법,⋯
이명선2018.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