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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읍시다” 그런 대법관이 그립다
그날은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서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됐다. 대법원 판결은 삼권분립에 따른 사법부의 독립을 명확히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말이 곧 법’이던 무서운 시절이어서 더욱 그랬다.
박상규2018.02.07 -
김기춘의 수상한 고백 “난 명예 먹고 산 선비”
“선비로서 평생 명예를 먹고 살았다.” 한 전직 장관은 2009년 10월 발간된 회고록 <오늘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에서 자신의 삶을⋯
김덕련2018.01.19 -
판사에게 불법행위 지시한 법원
법관들의 비밀 대책회의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크게 타오를 때 열렸다. 사법부 상징인 대법원 청사에 모인 이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박상규2018.01.18 -
피고인 김어준은 우리의 미래다
피고인석에 앉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고단해 보였다. 많이 지친 듯했다. 검찰은 김 총수의 유죄 입증을 위한 동영상을 2월 23일 오후⋯
박상규2017.12.01 -
가짜 살인범과 문재인의 슬픔
서쪽으로 떨어지는 겨울 해는 낙동강을 핏빛으로 적셨다. 저녁 바람이 강을 흔들었다. 저문 강에 소리없는 잔 물결이 일었다. 몸을 흔드는 강가의 마른 풀에선 물기 없는 소리가 났다. “여가 거 맞나?” “맞다. 여다.” 강가의 두 남자는 핏빛 강물을 보면서 부산사투리를 주고 받았다. 짧은 이야기로 장소를 확인한 둘은 눈으로 강을 훑었다. 둘만 놓고 본다면, 먼저 입을 뗀 남자는 키가 작고 마른 편이다. 말을 받은 남자는 옆 사람보다 키가 크고 덩치가 좋다. 26년 전, 두 남자는 바로 이곳에 온 적 있다. 부산 낙동강 작은 귀퉁이가 한 여성의 피로 젖은 그날도 겨울이었다. 달도 뜨지 않은 1990년 1월 4일 새벽 어둠은 피보다 진했다. 누군가 여성 시신을 강변 갈대 숲에 버리고 떠났다. 동쪽에서 떠오른 붉은 해가 조금씩 갈대 숲을 밝혔다. 버려진 시신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났다. 여성의 오른쪽 두개골은 함몰돼 있었다. 여자 이름은 박수경(가명. 당시 30세). 강변 곳곳에 남은 그녀의 핏자국은 아침 노을보다 진했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 새벽, 박수경은 혼자 낙동강변에 있지 않았다. 직장 동료 정현덕(가명. 당시 35세)과 승용차 안에 있었다. 얼마 뒤, 정현덕은 홀로 낙동강변에서 빠져 나와 가까운 공장에 몸을 숨겼다. 공장 직원이 발견했을 때 정현덕은 덜덜 몸을 떨었다. 그의 몸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경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정현덕은 공장직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진 후 경찰에게 이렇게 말했다. “차 안에 있었는데, 남자 두 명이 습격을 했습니다. 한 명은 키 크고 덩치가 좋고, 다른 한 명은 작고 말랐습니다.“ 수사를 시작한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사건의 실체는 달도 없는 새벽처럼 어둠에 잠겼다. 박수경이 살해된 날로부터 3개월 후인 4월 어느 날, 키 작고 마른 남자 장동익(당시 31세)의 딸이 태어났다. 파국의 물길이 조금씩 다가오는 걸 장동익과 그 가족들은 몰랐다. 장동익은 부산 감전동에서 아내, 딸과 함께 살았다. 1991년 11월 6일, 그는 감전동에서 낙동강 서쪽 부산 명지동으로 이사했다. 이틀 뒤인 11월 8일, 김공장 일을 마치고 돌아온 장동익을 위해 아내가 저녁밥을 준비할 때였다. “장동익씨, 계십니까?” 어떤 남자가 밖에서 불렀다. “잠깐 이야기 좀 합시다.”⋯
박상규2017.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