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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태민, 김기춘 “소문만 들었다”?
박정희 특명 받아 보안사를 몰아치다 “국군 장병 2명 북괴에 피랍.” 1977년 10월 26일 주요 신문 1면에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됐다. 이날⋯
김덕련2018.02.17 -
간첩 조작으로 사형 선고, 김기춘은 상 받았다
TK생 색출 시도와 친한파·반한파의 역설 문세광 신문을 계기로 1974년 9월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임명된 김기춘은 유신 독재 수호에 적극 나섰다. TK생⋯
김덕련 -
‘유신 최대 조작극’ 김기춘은 뭘 했을까?
민청학련·인혁당 재건위 사건 시기 중앙정보부장 법률 보좌관 법무부 과장 승진(1973년 4월) 1년 후인 1974년 4월 김기춘은 중앙정보부장 법률 보좌관으로 자리를⋯
김덕련 -
역대 최악 유신 헌법안 작성 주동자는 김기춘?
역대 최악의 헌법, 유신 헌법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 박정희가 느닷없이 유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렇게 해서 출현한 유신 체제는 박정희가 사실상⋯
김덕련 -
김기춘 ‘닭살 애정’ 피해자들은 고통
1961년 1월 31일 발표된 제12회 고등 고시 합격자는 52명. 김기춘을 비롯한 사법과 합격자가 31명이고 나머지 21명은 행정과 합격자였다. 김기춘은 대학⋯
김덕련 -
서울법대 동창회는 왜 김기춘 궤변 받아줬나
법관의 꿈 품은 중학생 김기춘, 부친 뜻과 달리 경남고로 한국에서 유일하게 2명의 대통령(김영삼, 문재인)을 배출한 고장, 거제도. 그 북단에 장목면이⋯
김덕련 -
이탄희 판사의 사표, 서지현 검사의 용기
이제 법원과 검찰이 결단할 차례다. 진실을 폭로한 두 법조인은 이미 긴 시간 고통을 겪었다. 그 시간보다 더 긴 고통의 터널이 눈앞에 보였지만 두 법조인은 뚜벅뚜벅 여기까지 왔다.
박상규2018.02.15 -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
사방이 캄캄한 새벽이었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가웠다. 오가는 사람, 차는 없었다. 가로등이 밝히는 저 좁은 땅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는⋯
박상규2018.02.09 -
“다 죽읍시다” 그런 대법관이 그립다
그날은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서 빛나는 순간으로 기록됐다. 대법원 판결은 삼권분립에 따른 사법부의 독립을 명확히 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말이 곧 법’이던 무서운 시절이어서 더욱 그랬다.
박상규2018.02.07 -
김기춘의 수상한 고백 “난 명예 먹고 산 선비”
“선비로서 평생 명예를 먹고 살았다.” 한 전직 장관은 2009년 10월 발간된 회고록 <오늘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에서 자신의 삶을⋯
김덕련2018.01.19 -
판사에게 불법행위 지시한 법원
법관들의 비밀 대책회의는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이 크게 타오를 때 열렸다. 사법부 상징인 대법원 청사에 모인 이들의 면면은 화려했다.⋯
박상규2018.01.18 -
피고인 김어준은 우리의 미래다
피고인석에 앉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고단해 보였다. 많이 지친 듯했다. 검찰은 김 총수의 유죄 입증을 위한 동영상을 2월 23일 오후⋯
박상규2017.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