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는 길이라 하니,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봄날의 푸른 꿈 모두 잠시 남겨두고, 입영열차에 몸을 실었다. 건강히 다녀오마 손 흔들며 떠난 청년들.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 장면은 사는 동안 두고두고 입에 올릴 추억 한 장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장면이 아련한 추억이 아니라 비극의 서막으로 남은 사람들도 있다.

그가 죽었다는 말이 귀에는 전해졌지만 마음까지 쉬이 가닿진 않았다. 그의 이름과 ‘죽음’이라는 단어를 나란히 놓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제까지 이름을 부르던 한 사람이, 이제 더 이상 말도 할 수 없고 안아볼 수도 없는 한 줌의 재로 변해버렸다. 물에, 하늘에 뼛가루를 뿌려 보냈다. 헤어졌지만 헤어질 수 없는 마음만 가족들을 붙잡았다.

이등병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마지막 말들도 사라졌다. 그들은 군인이었지만, 그들을 죽인 것은 적군의 총탄이 아니었다. 아는 것은 오직 그것뿐. 아무 이유도 알 수 없으니 모든 것이 이유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원망할 수 없어서 가족들은 스스로를 책망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을 탓했고, 군대는 죽은 자를 탓했다. ‘환경에 적응을 못해서’,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복무에 염증을 느껴서’…. 질문은 남았지만 아무도 묻지 못했다.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었기 때문에. 함부로 질문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고, 함부로 의심해서는 안 되는 시절이었다. 가족들의 한(恨)은 침묵의 세월을 먹고 자랐다.

역설적이게도, 깊은 침묵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됐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질문이 쌓이고 쌓이는 동안 세상도 변했다. 슬픔을 무기로 싸워온 가족들이 있었다. 그들 덕분에 조금씩 조금씩 진실의 문이 열렸다. 국가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로만 알아야 했던 시절은, 국가 스스로 진실을 밝히겠다는 시절로 바뀌었다.

수십 년 세월이 지나 드디어 열어본 진실의 문. 오랜 질문의 답이 거기 있었다. 그들의 죽음은 그들 자신의 탓도, 가족들의 탓도 아니었다. 그들은 국가를 지키려 했지만, 국가는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국가가 지키지 못한 청년들의 이름을 다시 호명했다. 그리고 늦게나마 그들에게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줬다.

“죽었던 자식이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의 문 안쪽에는 오랜 질문에 대한 답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질문들도 있었다. ‘사라진 이등병의 편지’ 프로젝트를 위해, 가족을 잃고 침묵 속에 질문을 간직해온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질문은 무엇이었는지, 긴 기다림 끝에 마주한 진실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듣고, 여기 담았다. 그리고 진실만으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의 존재 역시 ‘아프게’ 확인했다.

이것은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다. 진실의 빛으로도 다 밝히지 못한, 짙은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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