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자식만 줄줄이 낳고 생명보험 하나 없이 갑자기 죽었다. 아이 다섯에 가난한 엄마만 지리산 산골에 남았다. 공부를, 특히 수학을 잘했던 첫째 딸 장덕순(가명, 1961년생)은 학교를 그만두는 게 죽을 만큼 싫었다. 하지만 동생들이 굶고 못 배우는 건 자기가 죽는 것보다 싫었다.

장덕순은 중학교까지 다니고 서울 영등포 봉제공장으로 향했다. 보따리 장사도 하며 억척스레 살았다. 밑천을 마련해 시작한 의류사업은 승승장구, “지리산 최고 갑부 중 한 명”이 됐다.   

“얼마쯤 벌었냐고? 지가 얼마 벌었는지 아는 사람이면 그걸 부자라 할 수 있을까?”

장덕순은 바이오사업을 시작하고, 베트남과 미국에 부동산 투자도 했다. 강남에 빌딩도 올렸다. 압구정동 피부과에서 피부관리를 받던 어느 날,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공부 머리 좋고, 셈이 빠르며, 사업 성공으로 자신감까지 장착한 장덕순. 하지만 모르는 판에 섣불리 뛰어들지 않았다. 책 읽고, 유튜뷰 강의 듣고, 오프라인 강연을 들으며 약 1년간 코인 공부를 했다. 무릎을 쳤다.   

“이거 되네…. 코인 이거 돈 되겠네!”

장덕순은 2021년 봄 기준, 약 15억 원을 코인에 투자했다. 2025년 2월 기준으로 해당 코인의 가치를 따지면 대략 50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이 코인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스스로 ‘지리산 최고 독한 X’이라 생각하는 장덕순의 돈을 누가 건드렸을까?

하나의 유령이 테헤란로를 떠돌고 있다. 코인이라는 유령이. ⓒpixabay

장덕순은 고향 마을에서 바라본 지리산을 최고 높고 험한 산이라 여기며 평생을 살았다. 장덕순은 저 위에 백두산이 있고, 그 너머엔 만주 벌판이 있으며, 세상 어딘가에는 자기보다 독하고 똑똑한 누군가가 있다는 걸 간과했다.

‘제니’라 불리던 그 여자. K팝 아티스트 블랭핑크의 제니가 아니다. 중국동포 출신으로 알려진 ‘제니 킴’, 김지영(가명)이 장덕순의 코인을 탈탈 털어갔다. 경남 진주의 박 사장, 제주도 귤농부 김 씨, 경북 구미의 최 사장… 모두 제니 킴에게 당했다.

가해자는 제니 킴 한 명이 아니다. 오늘도 강남 테헤란로에서는 ‘코인 다단계 투자’ 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행사장마다 문전성시다. 수년 전부터 벌어진 일이다. 여기선 “100달러 투자로 100만 달러를 벌 수 있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고, 많은 사람이 여기에 쉽게 속는다.

피해자는 ‘이해력 부족한 가난한 노인’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장덕순 같은 사업가는 물론 대학교수, 대기업 직원도 코인 다단계 세계에 빠져들었다. 여기서 돈을 잃거나 사기당한 이들은 쉽게 테헤란로를 떠나지 못한다. 많은 피해자들이 원금을 회복하려 다른 사람을 다단계로 끌어들인다. 일종의 ‘좀비화 전략’. 코인 다단계는 이걸 핵심 축으로 돌아간다.

프로젝트 ‘테헤란로의 좀비들’은 누구든 빠져들 수 있지만, 누구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코인 다단계의 세계를 추적한다. 피해자와 가해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좀비 생태계’ 종식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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