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 촛불이 켜졌습니다.
힘센 누군가가 억지로 시킨 것도, 돈 많은 누군가가 검은돈으로 구슬린 것도 아닌데 계속 켜졌습니다. 코끝을 에는 찬바람에도 사람들은 거리에서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진 촛불은 광장을 밝히고 박근혜 일당을 권좌에서 끌어내렸습니다.
돌아보면, 해방 후 한국 사회가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민주주의와 인권 쪽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게 만든 근본 동력은 아래로부터 솟은 시민들의 힘이었습니다. 4월혁명 때에도,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때에도, 6월항쟁과 7·8·9월 노동자 대투쟁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2016~2017년 촛불 항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시민이 함께 만들어낸 촛불 항쟁은 뒷걸음질하던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렸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을 바꾸는 작업은 하루아침에 마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촛불을 들던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촛불 항쟁 이후 끊임없이 이어가야 하는 과제입니다.
구석구석, 켜켜이 쌓인 역사의 오물을 말끔히 씻어내려면 그러한 오물이 어떤 식으로 쌓여 오늘날에 이르렀는지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김기춘과 그의 시대’ 역시 그러한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김기춘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상세히 아는 분도 계시겠지만, ‘(세부적인 건 잘 모르겠으나) 지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여기거나 ‘유신 헌법, 초원복집,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식으로 기억하는 분이 더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루하루 살기도 힘들고 온갖 정보가 넘쳐나는 때인데, 아름답지도 않은 김기춘의 삶을 더 알 필요가 있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보다는 김기춘의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입니다. 김기춘이 한국 현대사에 새겨놓은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기춘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한 글은 생각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기춘 개인만이 아니라 김기춘이 살았던 시대와 사회를 함께 살피려 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사람도 기본적으로 자신의 시대와 사회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김기춘의 후예들이 더 득세하지 못하게 하려면 김기춘 전성시대를 가능케 한 토양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신영복 선생이 남긴 이야기 가운데 집을 그리는 순서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집을 지어본 적 없는 사람이 지붕부터 그린 것과 달리 목수는 주춧돌에서 시작해 기둥을 거쳐 마지막으로 지붕을 그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집을 제대로 지으려면 목수처럼 해야겠지요. 부박한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더딘 방식일 수도 있지만, 장목(김기춘 고향)에서 시작해 전성시대를 거쳐 감옥에 이르는 김기춘의 삶에 관한 집을 지어보려 합니다.
동행을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