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이런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용인시 반도체산업 인재 산실 ‘(가칭)용인 반도체 고등학교’, 교육부 중앙투자심사 통과’

용인시는 지난해 7월 ‘반도체 국가 첨단 전략산업 특화단지’로 선정됐다. “세계 최대 반도체 생산 및 혁신 거점”이라는 목표는 있지만, 인력은 부족한 상황. 여기에 부족한 인재를 고등학교에서 육성해 채우겠다는 취지다.

지난 3월에는 용인시청에서 민생토론회를 연 윤석열 대통령이 용인에 ‘반도체 마이스터고’ 설립 필요성을 언급했다. 지역이 원하고, 정부가 지원을 약속했다.

반도체. 고등학생. 취업.

왜 고등학생을 육성하는 방법을 택했을까. ‘장인’을 만들겠다는 명목으로 ‘값싸고, 순진하고, 힘없는’ 근로자를 착취하진 않을까. 기정사실화된 반도체 마이스터고등학교의 탄생에 우려가 앞섰다. 괜한 생각이 아니다. 이미 우리 곁에는 스무 살도 되기 전에 반도체 공장으로 간, 수많은 ‘반도체 소년’, ‘반도체 소녀’들이 있다.

“기자님, 최근 산재 불승인된 사건 당사자 중에 반도체 공장 다니던 열아홉 살 학생이 있는데요. 한번 만나보실래요?”

지난 7월 15일 선우 씨의 집 앞에서 그를 만났다 ⓒ셜록

그렇게 김선우(가명)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4년 전 반도체 공장에 취업했다. 당시 열아홉,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선우 씨는 전교에서 제일 먼저 취업한 ‘1호  취업생’이었다. 그리고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한 지 약 1년 만에 간이 완전히 손상돼 이식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이 가족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권할 정도로, 선우 씨의 병세는 위중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그야말로 구사일생 살아 돌아왔다. 이식수술 당시 그의 간은 완전히 녹아버려 조직검사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프게 된 명확한 이유도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불안은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한다. 몇 년 뒤에, 몇 번이나 더 재이식 수술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제든 다시 생사의 기로에 설 수도 있다는 공포. 그때도 다행히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만 열아홉 선우 씨가 어느 날 갑자기 맞닥뜨린 현실은 그런 거였다.

회사는 이식수술을 하고 회복 중인 선우 씨에게, 복귀할 수 없다면 사표를 쓰라고 했다. 회사는 마치 ‘선택’처럼 말했지만, 선우 씨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일단 살아야 했다.

이식수술 전후로 쓴 치료비와 약값은 무려 2억 원. 치료비와 약값은 평생 들어야 한다. 경제활동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도 몸이 따라줄지 의문이다. 빨리 돈을 벌어서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마이스터고로 진학하고 ‘1호’로 취업했던 선우 씨가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약값이라도 덜기 위해 산재 신청을 냈지만, 지난 5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불승인’ 판정을 받았다. ‘명확한 인과관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회사는 오히려 선우 씨를 몰아세웠다. 평소 그의 음주 습관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회사가 꼬집은 ‘문제적 음주 습관’은 주 1회 소주 2병을 마신다는 것.

과연, 열아홉 선우 씨가 일했던 회사는 안전했을까. 선우 씨 이전에도, 이후에도, 수많은 열여덟, 열아홉 살 노동자들이 그 회사로 취업했다. 열아홉 나이에 간이 녹아버린 ‘반도체 소년’ 선우. 그가 던진 물음표가 우리 사회의 상식을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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