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교가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학교는 학생이 숙제를 제출할 때 절반 이상 남의 것을 ‘복사’ 해도 점수를 줍니다. 선생님은 숙제를 꼼꼼히 살펴보지 않고 다른 글을 베꼈는지도 확인하지 않습니다. 이 학교는 정상일까요? 학생들은 이런 엉터리 숙제를 하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성장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이런 학교가 있다고는 상상하기 힘듭니다만, 이런 일이 정말로 벌어지는 곳은 있습니다. 바로, ‘국회’입니다.
국회는 입법부(立法府)라고 불립니다. 법이 탄생하고, 바뀌고, 없어지는 일이 국회의원들에 의해 결정됩니다.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선 이 과정에 전문성이 떨어지면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국회는 2005년부터 의원들의 입법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입법 및 정책 개발비’란 이름의 예산을 지원합니다.
의원들은 이 예산으로 입법 활동에 도움이 되는 세미나, 토론회, 공청회, 간담회를 열고 때로는 보고서도 만듭니다. 여론을 수렴하거나 정책을 연구하는 게 보고서를 발간하는 이유입니다. 의원실은 전문가(연구원)에게 연구 용역을 주고 결과 보고서를 받습니다. 보고서 한 편당 최대 지원 금액은 500만 원, 국회의원 한 명당 연간 2550만 원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용역보고서의 품질을 검증하는 절차가 없다는 것입니다. 표절 심사 프로그램을 거치는 등 대학생들도 준수하는 기본적인 연구윤리 기준이 국회엔 없습니다. 용역을 맡길 전문가, 보고서 한 편당 용역비를 모두 의원실이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국회 사무처는 별도의 점검 없이 예산을 지급합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과정이 없으면 결과에 문제가 생깁니다. <셜록>이 2020~2022년 사이 ‘정책연구’를 목적으로 제작된 용역보고서 323편의 표절률을 따져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개별적으로 살펴본 일부 용역보고서에는 표절, 짜깁기 등 연구부정의 흔적이 가득했습니다. 보고서의 절반 이상을 다른 연구물 내용으로 채우거나, 블로그나 위키백과 등에서 문장을 그대로 옮겨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500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보통의 직장인에겐 두 달 치 월급이 넘고(2020년 기준 임금근로자 중위소득 242만 원), 2만 원짜리 치킨 250마리를 시켜 먹을 수 있는 액수입니다. 액수보다 중요한 건 이 예산이 국민 세금으로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그렇기에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돼야 합니다. <셜록>이 이번 프로젝트에 뛰어든 이유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목적은 ‘국회의원 소규모 연구용역 보고서 검증 절차 마련’입니다. 표절 수위가 심각한 사례는 고발도 검토하고, 국회 사무처는 물론 구체적인 사례가 확인된 의원들이 소속된 정당들에게도 대책을 요구할 계획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위한 이 여정에 여러분도 함께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