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식’을 듣고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블랙리스트가 다시 부활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이정헌 작가)
문화예술인들에게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는 트라우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가진 만화가들은 작품활동을 ‘검열’당했고, 각종 지원과 요직에서 ‘배제’됐고, 불법으로 ‘사찰’당했다.
그런데 지금, ‘블랙리스트 트라우마’가 다시금 깨어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관한 부천만화축제에서, 윤석열 정부를 풍자한 카툰인 ‘윤석열차‘가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 수상작으로 전시됐다. 이 작품에 대해 행사 후원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엄중 경고’ 조치를 내렸다. “행사 취지에 어긋난 정치적 주제의 작품‘“이라는 게 이유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등을 풍자한 예술인들의 전시가 기습 철거되는 일도 있었다. 정치 풍자 성격의 작품을 선보이려던 전시 <굿바이전>은 본래 올 1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릴 계획이었다. 1월 9일에 공개될 예정이었던 전시는 국회사무처에 의해 그날 새벽 기습 철거됐다.
여기에 더해 문화예술인들이 ‘블랙리스트의 시초’로 꼽는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귀환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도 들렸다.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은 유인촌 전 문체부 장관을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유인촌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 초대 문체부 장관을 역임했다.
일련의 과정 속에서, 특정 작가들을 겨냥한 ‘자료 수집’이 시도됐다. 만화가 이정헌 작가가 말한 ‘그 소식’이다.
김승수 국회의원(국민의힘, 대구 북구을)은 최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윤석열 정부 풍자 전시인 <굿바이전>에 참여한 작가들에 대한 지원금 자료를 요청했다. 의원실 요청 자료에는 작가들의 정부 지원 사업 선정 내역, 즉 ‘나랏돈을 받았는지에 대한 내역’이 포함됐다.
정부 비판 작품의 검열과 배제, ‘블랙리스트 시초’ 의혹을 받는 전 문체부 장관의 귀환 가능성, 때 맞춰 특정 작가들만을 대상으로 이뤄진 여당 국회의원의 정보 수집 시도까지.
작가들은 말한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아직 잠들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