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가방 속 하얀 속지로 정성스럽게 싸여 있었던 옷 한 벌. 검은 사제복이었다. 목덜미 라벨에는 ‘심기열’ 세 글자가 자수로 새겨져 있었다.

열여덟 살 심기열은 신의 아들이 되기로 결심했다. 사제가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신학대 학부 4년, 대학원 3년, 군대 2년 그리고 복음기간 2년. 심기열은 자신의 20대를 바쳐, 신의 선택을 받았다.

심기열은 천주교 대구대교구청 소속 사제였다. 대구 지역 성당 세 곳에서 약 4년을 보냈다. 심기열은 어느 날 갑자기 ‘정신질환자’가 됐다. 교구청 조직도에도 나오지 않는, 베일에 쌓인 ‘자문단’의 판단이었다. 심기열을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으면서, 전문의의 진단도 없이 그에게 ‘편집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판단했다.

교구는 심기열에게 ‘휴양’ 결정을 내렸다. 심기열은 약 8개월 동안 종합병원, 대학병원, 서울 소재 대형 심리상담센터까지 찾아다녔다. 자신의 ‘멀쩡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어느 곳에서도 심기열에게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교구는 심기열의 ‘증명’을 외면했다. 오히려 심기열을 면직시켰다. 심기열은 자신의 20대를 바쳐 이뤄낸 사제직을 빼앗겼다. 심기열은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검은 사제복처럼, 사제로 지낸 짧은 시간을 고이 접어 가방 속에 간직해야 했다.

제가 죽으면 이런 일이 다 끝날까, 생각했습니다. 누구 하나 도움을 안 주더라고요.”

심기열은 교구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종교단체의 결정이라면, 한 사람을 멋대로 정신질환자로 몰아가는 행위마저 허락될 수 있는 걸까. 신의 이름으로 올려세운 높은 성벽 안에서, 무참히 짓밟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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