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상습 강간범 서진환은 거리를 배회했다. 다리엔 전자발찌가 채워져 있었다. 그는 미리 준비한 칼을 들고 범행 대상을 찾아 다녔다. 자유롭게, 거리낌 없이.
서진환은 예고 없이, 흔적 없이 장주영(가명)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 남편은 출근했고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갔다. 집엔 장주영뿐이었다. 장주영은 서진환에 맞서 끝까지 저항했다. 소리를 지르고, 구조를 요청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장주영(가명)은 살고 싶었다. 자신과 삶을 사랑했다. 네 살 아들과 세 살 딸을 자신보다 사랑했다. 자신만큼 남편을 사랑했다. 존엄한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자유의지로 살고자 했다. 가야할 길, 이루고 싶은 꿈도 분명했다.
장주영은 살해됐다. 서진환이 죽였다. 현장은 지옥처럼 참혹했다. 장주영은 지옥의 한복판에서 눈을 감았다. 남은 가족은 지옥에서 살 수 없었다. 이사를 했다. 집을 옮긴다고 기억이 지워지는 건 아니다. 두 아이와 남편은 지옥의 변두리를 걷고 있다. 서진환은 수사과정에서 말했다.
“여태까지 겁탈한 여성들 중 제일 유별나게 저항했습니다. 그냥 순순히 복종했으면 아무 일 없었을 것을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말이다. 문제는 그의 말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은 따로 숨어 있다.
사건이 벌어진 때는 2012년 8월 20일. 서진환은 그날 그 시각에 교도소에 있어야 했다. 교도소에 있어야 할 서진환은 그날 어떻게 거리를 활보했을까?
여기엔 검찰, 법원의 실수와 잘못이 있다. 법을 다루는 이들이 법대로만 했으면, 서진환은 그때 자유의 몸이 아니었다. 이게 끝이 아니다. 서진환이 수감됐던 교도소, 관할 경찰서, 보호관찰소도 잘못을 범했다. 검찰-경찰의 알력 다툼 문제도 존재한다.
게다가 서진환은 장주영 살해 13일 전에 한 여성을 강간했다. 전자발찌를 찬 상태로 말이다. 경찰은 유전자 정보까지 확보했다. 그럼에도 수사기관은 서진환을 검거하지 못했다. 그가 범인이란 것도 몰랐다. 얼마 뒤, 서진환은 장주영을 살해했다.
장주영이 사망한 ‘중곡동 부녀자 살인사건’에는 국가 기관의 실수와 잘못이 얽힌 실타래처럼 꼬여 있다. 교도소에 있어야 할 사람이 밖에 있고, 전자발찌를 찬 사람이 강간을 저질렀는데도 검거하지 못했으니,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게 국가의 존재 이유 아닌가?”
장주영의 남편 박귀섭은 국가에 책임을 묻는다. 아내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동안 과연 국가는 무엇을 했는지 따지고 있다. 그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무기수 김신혜 사건’ 재심 결정,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재심 확정을 이끈 박준영- 신윤경 변호사가 다시 나섰다. 두 변호사와 함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 재심을 추진하는 박성철-양승철 변호사도 힘을 보탠다.
대한변협 세월호 참사 특별위원회 법률지원단 소속 정철승 변호사도 결합했다. 여러 변호사와 함께 ‘재심 시리즈’ 기획을 진행한 박상규 기자도 다시 펜을 들었다.
변호사 다섯 명과 기자 한 명, 다시 한 팀이 되어 길을 나선다. 사망한 장주영, 유가족 박귀섭과 두 아이만을 위한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일이다.
모든 시민은 국가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살 권리가 있다.
(2016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한 기사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 옮겼다는 걸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