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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반공’에 머물러 있는 정권… 지금 전쟁 나면 학살 일어날 것”
그의 얼굴을 보면 제일 먼저 딱 떠오르는 두 글자가 있다. ‘고집’. 혼자 카메라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닌 지 20여 년.⋯
2023.10.20 -
13화. 주인 없는 생일밥… “작은 비석 하나 세울 수 있다면”
경남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노쾌출(1921년생, 당시 30세)의 논. 그날도 노쾌출은 뜨거운 여름 볕 아래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저기 논 밖에서⋯
2023.07.19 -
12화. 돈 벌러 일본 갔다던 아버지… 그 여름의 ‘하얀 거짓말’
박영대(1947년생)는 고모와 함께 살았다. 어린 시절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궁금증. ‘다른 애들은 다 아버지가 있는데 왜 나는 아버지가 없을까.’⋯
2023.07.13 -
11화. 차가운 물속일까 골짜기 땅속일까… 아버지의 숨이 멈춘 곳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집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경남 창녕군 부곡면 부곡리. 밀양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열여섯 살 이우화(1935년생)는 1950년 7월 여름방학을 맞아 창녕⋯
2023.06.29 -
10화. “요 어린 것들만이라도…” 가족의 생사 가른 ‘인간사냥’
“아주 무서운 경찰들 있다고요. 아주 벌벌 떨고 그랬지, 우리 어린애들은.” 여든다섯 이풍식(1939년생)의 눈빛에 72년 전 그때처럼 두려움이 비쳤다. 열세 살⋯
2023.06.23 -
9화. ‘빨갱이밭’ 소탕 작전… 임신부와 세 살 아이까지 죽였다
그들은 최상구(1946년생)의 마을을 ‘빨갱이밭’이라 불렀다. 경기(지금은 인천) 강화군 교동면 상룡리. 당시 여섯 살이었던 최상구가 ‘빨갱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했을까.⋯
2023.06.15 -
8화. ‘너 하나라도 살아야 해’ 딸 목숨 구한 엄마의 거짓말
대살(代殺). ‘대신 죽이다’. 의미를 들어도 선뜻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이 끔찍한 단어가 1951년 방계숙(당시 12세)에게는 ‘현실’이었다. 경기도 강화군 교동면 지석리.⋯
2023.05.30 -
7화. “간첩이라도 좋으니 아버지 손 잡고 하루만 지냈으면”
여섯 살 꼬마가 기억하는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전남 영암군 영암읍 용흥리 탑동마을에 살던 송영덕(1945년생)은 몇 가지 장면으로만 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2023.05.09 -
6화. 아버지 죽이고 어머니 욕보인 그들… “평생 못 잊어”
비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작은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전남 진도에 살던 최소자(1940년생)는 1950년 한국전쟁 중에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는 군인이 아니었다.⋯
2023.05.03 -
5화. “여기서 아버지가 죽었어요” 70년 만에 바친 꽃다발
뒷짐을 진 노인들이 산길을 오른다. 느린 걸음. 고요한 침묵. 내내 땅을 보며 걷다가 이따금 고개를 들면, 아련한 눈빛들이 서로 마주친다.⋯
2023.04.28 -
4화. 제삿날이 똑같은 마을… “아버지를 잃고 평생 억울했다”
1950년 7월 28일. 한여름 땡볕 밑에서도 농사꾼의 손은 바빴다. 전쟁통에 인간세상은 뒤숭숭했지만 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경북⋯
2023.04.24 -
3화. “한마디 묻지도 않고…” 명단 하나로 끊어진 목숨
“형님이 그때 결혼한 지 불과 1년 정도밖에 안 됐을 땐데…. 음력으로 8월 스무 날 넘어서, 들에 나락(벼)이 누럴 때 나락⋯
2023.04.06 -
2화. “형님, 점심 먹으러 갔다 오소”… 생사 가른 세 번의 ‘불운’
화근은 ‘도장’이었다.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도장을 받던 사람들. 누구는 이웃사람이고 누구는 또 친척이었다.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그깟 도장 한 번 못⋯
2023.03.31 -
1화. 할아버지 대신 끌려간 아버지는 그날 ‘총살’됐다
이세준의 집안은 남부러울 게 없었다. 종가의 종손인 할아버지는 경북 안동시 와룡면 면소재지에서 양조장을 운영했다. 학교 문턱도 못 넘어본 사람도 수두룩하던⋯
2023.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