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치지 마세요. 멈추면 안 됩니다. 이건 진실과 정의를 위한 일이니까요. 우리 힐스보로 참사 유가족은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응원합니다.”

마가렛은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녀 손목의 밴드에 적힌 붉은색 글자가 선명했습니다.

’96’

그녀의 18살 아들은 1989년 4월 15일, 축구 보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날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 간 FA컵 준결승이 열린 영국 셰필드 힐스보로 구장에서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96명이 사망했고, 760여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사망자 중 절반은 10대 청소년이었습니다. 마가렛의 아들도 그 중 한 명입니다.

마가렛 등 참사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진실 규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오늘날까지 26년간(2105년 기준) 싸우고 있습니다. 끈질긴 싸움, 결국 희생자 부모들은 참사의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정부, 언론, 정당의 사과도 받아냈습니다.

진상조사 결과 경찰의 무능, 판단 착오, 대처 미흡이 참사의 원인이었습니다. 영국 경찰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 진실을 조작했습니다.

힐스보로 구장 측은 관중 안전을 위해 시설 보수공사가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점도 밝혀졌습니다.

희생자 가족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참사 희생자 사인 규명을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사람들에 맞서 희생자 가족들은 어떻게 싸웠을까요? 영국 정부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요? 힐스보로 진상조사위에는 어떤 권한이 있었을까요?

힐스보로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 비슷합니다. 

ⓒ리버풀구단

힐스보로에서 세월호의 미래를 가늠하고자 합니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무기수 김신혜’ ‘로저의 남북 백두대간 이야기’를 취재했던 박상규 전 <오마이뉴스> 기자가 2015년 7월 영국 리버풀로 향했습니다.

진실을 위한 26년의 여정. 힐스보로 유가족과 영국 사회는 어떤 일을 겪었을까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월호 진실 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싶습니다.

(박상규 기자가 2015년 카카오 스토리펀딩에 연재했던 기획입니다. 2021년 <셜록> 홈페이지에 옮긴다는 걸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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