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혁당에는
2개의 판결이 있다

아버지 박정희가 떠올랐을까요? 18대 대선 때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유신 시절 최악의 간첩 조작 사건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가 말을 바꿨습니다. 바로 ‘인혁당(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입니다.

국제법학자협회는 1975년 4월 8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기록했습니다. 한국 대법원이 ‘인혁당 사형’을 선고한 바로 그날입니다. 선고 직후 불과 18시간 만에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사형 집행 후 경찰은 시신을 탈취해 강제로 화장했습니다.

인혁당 사건은
완벽한 조작이었습니다

‘북한의 지령을 받았다’는 거짓 진술을 받으려 중앙정보부는 무고한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고문을 했습니다.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도 그랬습니다. 애초에 인혁당은 존재하지도 않았지만, 힘으로 짓이겨 거짓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이들을 희생양 삼아 유신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섭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무려 30여 년이 걸렸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말한 ‘두 개의 판결’은 없습니다. 재심으로 잘못된 판결을 바로 잡은 겁니다. 오히려 오판을 한 사법부가 사과해야 합니다.

‘인혁당, 2개의 판결’ 발언으로 지지율에 제동이 걸리자 박근혜 후보는 바로 꼬리를 내렸습니다. 기자회견을 열어 과거사 피해자들을 만나고, 아픔과 고통을 치유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진정성에 의심을 샀습니다. ‘인혁당’을 ‘민혁당’이라고 잘못 읽었습니다. 프롬프터에 틀리게 적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논란은 덮어지지 않았습니다.

박근혜의 약속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악몽이 시작됐습니다. 과거사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박근혜 정권은 되려 피해자들에게 받은 배상금을 토해내라고 했습니다.

2009년 8월 인혁당 피해자 77명에게 가집행된 배상금 491억여 원에 대하여 국정원이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건 겁니다. 2011년 1월 대법원이 이자 계산법을 바꾸면서 30여 년치 이자가 삭제됐고, 이로 인해 피해자들이 받게 될 배상금 규모가 280억 원가량으로 대폭 줄었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의 숨통은 점점 조여왔습니다. 집은 경매에 넘겨질 위기에 처했고, 통장은 압류됐습니다. 20%에 달하는 연체 이자율은 빚을 눈덩이처럼 불렸습니다. 고문의 가해자 국정원(중앙정보부 후신)이 채권자로 바뀐 겁니다.

난데없이 손해배상 소멸시효 기준이
3년에서 6개월로 바뀌다

고통받는 사람들은 더 있습니다. 법원은 국가폭력 피해자가 국가배상금을 청구할 수 있는 소멸시효를 3년에서 6개월로 갑자기 축소했습니다뚜렷한 근거도 없이 말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의 국가폭력 피해자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해 수억 원의 배상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 역시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일입니다.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제62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한 말입니다. 과거 청산에 대한 명확한 의지를 호국영령과 민주열사의 혼령 앞에서 못 박았습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첫 번째 기자회견에서 국정원장 내정자를 발표했습니다. 국정원 쇄신에 대한 강한 의지입니다.

‘이명박근혜’라고 불리는 보수정권 시절에 피눈물 흘린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눈물이 이제는 닦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잘못된 단추를 다시 제대로 끼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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